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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15 ] 벨 덴탈 센터 치과 병원 - 윌리엄 최 원장

지역 커뮤니티의 소중한 치과병원 한국어, 스페인어, 영어 능통 정신 지체 장애인의 유일한 기둥

윌리엄 최, 눈코 뜰새 없이 정말 바쁜 그를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만났다. 그는 30대 중반으로 베이지역에 4개의 치과병원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30대 젊은 병원장이다. 환한 미소와 맑은 눈에서 그의 진실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의 부지런하고 순수한 삶의 태도가 감명 깊었다. 소외된 이웃을 위해 대형 병원들도 하지 못하는 실질적인 도움의 손길을 베풀 줄 알며, 하루 12시간 이상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그에게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감사와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만난사람 발행인 아이린 서

Q. 간단한 본인소개
A. 제 이름은 윌리엄 최입니다. 서울에서 1980 년도에 태어나, 5살 때 아르헨티나로 부모님과 이민을 갔다가, 15살 때 미국 LA로 이민을 와서 UC 어바인 대학을 졸업한 후, 필라델피아 펜실베니 아에 있는 템플 대에서 치대를 마치고, 샌프란시스코의 UCSF 에서 치과 레지던트를 마쳤습니다. 2010년 샌리엔드로에 '벨 덴탈센터' 치과병원을 개원했고, 2014년도에 샌 리엔드로와, 버클리, 그리고 뉴악에 3개의 치과병원을 더 개원했습니다. 부모님과 남동생, 여동생은 현재 LA 에 거주하며 함께 자바시장에서 의류제품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템플 대 치대에 다닐 때, 치과 레지던트 2년차였던 아내 '아이나 김'을 만나 졸업 후 아내가 치과 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베이지역으로 이주해 치과 레지던트생활을 하며 결혼 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고, 예쁜 딸, 소피, 쥴리 와 씩씩한 아들 윌리암이 있습니다.

Q.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
A. 저는 아주 어릴때 부터 계속 치과의사가 되고 싶어했는데, 부모님께서는 제가 하고 싶어하는 일이 무엇이든 열심히 하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아버지는 다정하고 젊잖고 예의가 바른 분이셨고, 어머니는 굉장히 강하고 적극적이고 활발한 분이셨어요. 어머니는 미국으로 이민을 오고 싶어하셨고 이민 후 할 일을 위해 양재학원에 다니시며 의류 만드는 것을 열심히 배우셨어요. 그런데 당시 미국으로의 이민은 굉장히 어려웠기 때문에, 이민 후 영주권을 바로 받을 수 있는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결정하셨어요. 어머니는 어머니의 비행기표와 저의 형제자매들 비행기표 모두 4장을 구입해서 아버지에게 우리와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가든지, 아니면 서울에서 부모님과 계속 살든지 선택을 하라고 하셨고, 아버지께서는 우리와 함께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결정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당시 한국보다 잘 사는 나라였어요, 아르헨티나 스테이크가 아주 유명하고, 주 음식은 이탈리아 음식이고 파스타, 피자등을 주로 먹었어요. 와인도 많이 즐기고, 축구에 열광하는 성격이 강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한 이후부터 어머니는 일주일에 하루도 쉬지 않고, 130시간씩 최선을 다해 일하셨어요. 물론 미국 LA 로 이민 온 후에도 거의 일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어요. 최근 몇 년 전부터는 일을 좀 줄이셔서 일주일에 100시간 정도 일하고 계세요. 거의 평생 자유롭게 여유롭게 즐긴 적이 없으실 뿐 아니라 일을 하는것이 가장 즐겁다고 말씀하시곤 하세요. 아르헨티나에 살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일들은 인종차별 이었어요. 버스를 타고 가다가 다른 승객들이 아시아인들 보고 내리라고 하면 내려야 했었고, 길거리를 걷다가 지역 주민들이 아시아인들에게 침을 뱉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학교에서 아시안 학생들을 집단적으로 왕따를 시키고 때리고 괴롭혀도 선생님들이 신경도 안 썼어요. 한 중학교 정도 되면 선생님들이 학생들과 함께 담배도 피우고 했던 모습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아르헨티나의 당시 상황은 외국인들이 살기에 정말 열악했어요. 그런 인종차별을 매일 매일 보고 듣고 겪으면서, 어릴 때부터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보면 막 화가 나고 도와주게 되었어요. 학교에서 몇 안 되는 아시아 학생들이 구타 당하는 것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 가 없었습니다.

Q.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주요 멘토 와 에피소드는 ?
A. 제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은 어머니입니다. 저의 멘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치대 시험을 치러 갈 때 몇 일 동안 잠도 못 자고 시험준비가 제대로 된 것 같지 않아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어요. 이번 시험을 취소하고 다음에 다시 보겠다고 말씀 드렸더니, 어머니는 "내가 강한 남자를 키웠지 나약한 계집애를 키웠냐"고 바로 호통을 치셨어요. 저희 어머니는 완전히 여걸 스타일 이십니다. 어머니께서 뭔가 할 때 정말 누구도 따라 하지 못할 정도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시는 적극적인 모습과 평생토록 성실하고 변함없이 지속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점점 어머니를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Q. 벨 덴탈 치과병원을 운영할 때 중요한 점은 무엇인지 ?
A. 치대를 졸업하자 마자 치과 병원을 개업했어요. 한 빌딩을 리스해서 치과 치료실 5개를 만들었어요. 처음 오픈 할 때 병원 마당에서 샌리엔드로시 시장도 모시고, 지역 주민들 수 백 명을 초청해 통 돼지 바베큐 파티를 했어요. 음식도 넉넉히 준비하고 지역 주민들이 좋아하는 음악밴드를 초청해 신나는 음악도 연주하고 하루 종일 손님들과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병원 개업 후 매일 주 7일을 근무했어요. 고맙게도 오픈 하자 마자 환자들이 많이 오셔서 하루에 최소한 12시간 이상씩 일을 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그 빌딩을 사게 되었고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5년동안 일주일에 하루를 UCSF 에서 클리니컬 교수로 발룬티어 활동을 하면서 치대 학생도 가르치고, 의대 학생도 가르쳤습니다. 또, UCSF 병원에서 정신 지체 장애인/기형아/장애인 (이하 정신 지체 장애인) 환자의 치료를 했습니다. 정신 지체 장애인등의 치아 치료를 위해서는 국부마취로 하지 못하고 전신마취를 해야 할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몸을 제어하지 못하고, 치료하는 의사에게 주먹으로 폭행을 하거나, 기물을 파손하고, 소리를 지르는 치료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의사 한 명이 치료를 도저히 할 수 가 없어서 두세 명이 함께 치료를 해야 하고, 마취의사도 함께 수술실에서 치료를 계속했습니다. 그 정신 지체 장애인 들 중 중증 환자의 대부분은 가족에게서도 버림받고, 그룹 홈에서 살면서, 말도 못하고, 걸음도 잘 못 걷는 사람들이 나라에서 주는 웰페어로 살고 있습니다. 일반 장애인들의 치과 치료는 어느 치과병원에서나 다 할 수 있고, 웰페어로 치과 치료를 해주는 병원도 어느 도시에나 있지만, 중증 정신 지체 장애인 치과치료를 웰페어로 해주는 치과 병원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 서비스를 해주는 병원은 최근까지 페시픽 대학 치과병원(University of Pacific)과 UCSF 밖에 없었습니다. 캘리포니아 대학 10군데 중 공공 건강에 가장 앞서가던 UCSF 에서 웰페어로 정신 지체 장애인을 치료하는 프로그램을 경제적 문제가 너무 심해 중단 하려 했고, 이를 막고자 여러모로 사람들을 찾아가 보고 이야기를 나눴으나, 일인당 치료에 8만불 이상 적자가 되는 경우도 많아 결국 지난 6월에 이들을 위한 치료가 전면 중단 되었습니다. 이들의 치료가 까다롭고 비용이 크기 때문에 많은 치과 병원들이 외면하는 분야지만 지역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현재 페시픽 대학 치과병원이 유일하게 이런 환자를 받고 있지만 웨이팅 리스트가 2-3년정도 인 상황입니다. 그래서 제가 고심 끝에 벨 덴탈 뉴악 치과병원에서 2주에 하루를 정신 지체 장애인 환자만 치료합니다. 그 중에서 전신 마취가 꼭 필요한 중증 환자는 스탠포드 대학에 가서 치료를 해주고 있습니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고, 누구나 그런 아이들을 갖게 될 수 도있으며, 경제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 있습니다.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장애인들의 선택으로 그들이 그 상황에 처한 것이 아니고 그런 상황에 내몰린 사람들 입니다. 그룹홈에 사는 휠체어를 탄 정신지체 장애인인 20살 젊은 청년의 모든 잇몸에 염증이 있고, 치아가 모두 나쁜 상태인 경우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칫솔로 이빨을 닦아 주는 것이 정말 정말 쉽지 않기 때문에 방치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릴 때 부터 느끼던 것인데, 저는 약하고 어려운 환경의 친구를 도와 주는 것이 참 좋습니다. 사람들이 약한 사람을 무시하면 화가 납니다. 돈 없고 몸이 약하면 아무도 도와주려고 나서지 않습니다. 환자치료비로 한 $100정도 받으면, 제가 감당하는 경비는 약 $1,000정도 되는 수준입니다. 2주에 하루 정도는 제가 감당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그런 환자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기둥이 되고 싶습니다. 레딩, 새크라멘토, 모데스토, 베이커스 필드등 4~5시간이상 먼 곳에 사는 환자들도 많이 찾아오십니다. 한번은 한국 분이 장성한 지체 장애인 아들을 데리고 오셨는데, 한국 정서상 남들에게 말도 못하고 아들을 돌보며 많이 힘들었고, 아무데서도 아들 치과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고 하염없이 우셨습니다. 1년에 한번씩 불우한 이들을 돕는 것은 누구나 큰 부담 없이 가능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꾸준히 계속해서 일관되게 도와주려면 그것은 정말 큰 결단이 필요한 일입니다. 제가 계속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으려면, 저희 치과 병원이 잘 운영 되어야 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저의 본업을 잘 운영하지 못하고 성공을 못하면 이런 서비스를 할 수 가 없기 때문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잠시 하다가 중단 하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 혼자 할 수 도 없고, 저 혼자 해서는 안 되는 일이기 때문에, 제가 여러 병원과 학교에 다니며 이런 치료에 대해 다양한 기관에서 교육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임플란트 한국 세계에서 4위 기업인 하이 에센에서 교육을 했고, 기형아 임플란트등의 교육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항상 제가 아는 것을 주변에 알려주고 제가 가진 것을 조금이나마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인생에 중요한 점은?
A. 후회없이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항상 존경하는 저희 어머니처럼 열심히 12시간씩 일하면서 보람을 느낍니다. 병원에서 하는 업무 자체는 전혀 힘들지 않고 즐겁습니다. 본인이 하는 일을 즐거워하지 않고 힘들다고 생각하거나, 오늘 일하기 싫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치과의사라는 직업으로 사람을 도울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기계적인 일로만 생각하면 하는 일이 즐겁지 않게 될 수 있지만, 제가 하는 일의 본질이 보이기 때문에 언제나 즐겁고 행복합니다. 제 인생에서 아내와 결혼하고 윌리암, 소피, 줄리가 태어나고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참 소중합니다. 규칙적으로 일주일에 4일 새벽 5시 30분에 아내가 운동하러 갈 때와 저녁에 퇴근하면 최대한 우리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재밌고 좋습니다. 간혹 스트레스가 쌓이면 전화기로 아이들 얼굴을 보고, 아내와 영화를 봅니다. 최근에 스타워즈를 봤는데 재밌었습니다.

Q. 앞으로의 꿈은? 그 꿈을 위해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지?
A. 글쎄요, 거창한 꿈은 없고요, 좋은 남편, 좋은 아빠로 사는 게 제 꿈 입니다. 주변의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살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희 치과병원의 직원들은 치과 병원에서 경력을 쌓았던 분들이 아니고, 대부분 환자들이나 주변에서 알려준 대부분 문제가 많았던 사람들입니다. 치과 병원에서 선호하지 않는, 게이, 레즈비언, 술 중독자, 문신있는 사람, 장기적으로 취직을 못하던 사람들 등 치과 근무 경력이 없던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제가 인터뷰를 해보고 같이 믿고 일할 수 있겠다 싶은 마음이 들면 채용해서 하나하나 교육시켜서 함께 일합니다. 대부분 오래도록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같은 직업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 그리고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A. 치과 의사들이 돈을 많이 번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고, 사실 많은 치과 의사들이 돈을 벌려고 최대한 노력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물론 많은 치과 의사들이 학자금 융자도 있고 해서 경제적으로 치중해야 할 환경일 수도 있습니다만, 치과 의사가 돈을 벌려고 하면 할 수록 돈을 벌 수가 없습니다. 돈만 바라는 사람들은 더 못 벌게 됩니다. 환자들에게 진심으로 대하고 최선을 다하고 평생 학생 같은 마음으로 계속 공부를 하고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치과 의사 면허가 있다고 그 상태로 눌러 앉으면 절대 안 됩니다. 앞으로 누가 치과의사로 성공하려면 사람관계 와 교육에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인간이기에 누구나 실수를 할 수 도 있고,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환자 하나하나에게 성실히 최선을 다하면 만약 실수를 한다 해도 오히려 더욱 찾아오게 됩니다.
한달 전에는 지체 장애인 환자가 병원에 들어오자 마자 벽에 달려가서 머리를 쾅 찧었습니다. 보호자도 없었고, 막지도 못했습니다. 머리가 찢어져서 피와 지방이 튀어나와 치료해주었습니다. 중증이 아니라도 스스로 콘트롤 못하고 주먹으로 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치과 의사라는 직을 직업으로 보기 보다는 남을 돕는 사명으로 기쁘게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일년에 한번 가는 봉사활동 정도로 생각하면 안되고, 일관성 있게 꾸준히 노력 해야 하는 일입니다. 특히 돈이 안 되는 환자라고 치료를 피하는 것은 잘 못된 것입니다. 돈이 안되더라도 일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 일을 하면서 즐거워 할 수 있는 분들이 치과 의사가 되면 좋겠습니다.
한인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인 가정에 정신지체 장애인의 치과 치료가 필요하신 분이 주변에 있다면 저희 치과병원에서 최대한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2016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벨 덴탈 센터 치과 병원 - 윌리엄 최(William Choi) 원장

  • Bell Dental Center - San Leandro

  • 벨 덴탈 센터 치과 병원의 직원들 Bell Dental Center - San Leandro

  • 벨 덴탈 센터 치과 병원 - 윌리엄 최(William Choi) 원장과 Ina Kim 신경치료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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