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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보 (전 기자협회)
2024-10-01 SF저널 10년, 성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2014년, 북가주 한인사회에서도 고품질의 명품잡지를 만들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시작된 종합교양지 'SF저널'이 올해로 10년을 넘기고 있다. 매일 집으로 배달되는 일간신문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한인마켓이나 식당에서 가져온 주간지를 뒤져가며 생활정보를 찾던 시절이 있었다. 전면 칼라로 인쇄되어 여타 신문들에 비해 막대한 경비가 들어가는 이 사업이 10년간이나 지속될 줄은 동종업계 관계자들은 물론 본사 임직원들도 예상하지 못했다. 세상은 엄청난 속도로 변화되어 사람들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하나씩 들려있게 되었고, 모든 뉴스와 정보는 손가락의 터치속에서 무한하게 제공된다. 이런 인터넷 환경속에서 제일 먼저 타격을 받은 곳은 역시 언론사를 포함한 인쇄매체들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친숙했던 일간 신문과 주간지들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고 그나마 몇 안되는 정기간행물들도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는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척박한 환경 속에서 SF저널은 어떻게 10년을 버티며 여전히 발행되고 있을까? 첫째로는 SFKorean.com이라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가 베이스가 되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뉴스와 정보를 공유하며 자생력을 키워왔던 것이 생존전략이 되었다. 발행인과 임직원들의 확고한 의지와 함께 필진들의 협조, 광고주들의 매체에 대한 신뢰감도 큰 힘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물론 고정 독자층의 확보로 인지도가 높아진 것도 SF저널의 존재가치를 인정하게 했다. 편집마감 시한이 돌아오는 월말이면 중압감이 들텐데도 좋은 글과 정보를 보내준 칼럼니스트들과 필진들에게 감사한다. 특히 10년간 한번도 빠짐없이 창작 예술작품을 실리게 해준 김해연 작가와 로린 박 양에게 감사를 전한다. 불경기에도 광고를 중단하지 않고 매체를 믿고 함께 이겨낸 광고주들에게도 사업체의 건승을 기원드린다. 한 사람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도저히 만들어 낼 수 없는 10년의 발행기록을 이제 다시 쓰려 한다. 보다 세련된 디자인과 인쇄상태를 유지하고 내용을 업그레이드 하여 책꽂이에 꽂아놓거나 접대 테이블에 올려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명품잡지가 될 것을 감히 약속 드린다. 한인사회 행사마다 주력 언론사의 사명을 잊지않고 보도에 힘쓰겠고 좋은뉴스와 꼭 알아야 될 정보전달에도 게으르지 않을 것이다. 매거진의 제호를 'SFKorean.com' 으로 바꾼것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동일시하여 브랜드 이미지를 높여나 가기 위함임을 알려드린다. 그동안 성원해 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겸손하게 이 길을 묵묵히 걸어가겠다고 다짐한다.
박성보 (전 기자협회)
2024-09-01 하늘아래 영원한 것은 없다
세상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었다. 유럽은 물론 서아시아, 북부 아프리카까지 방대한 지역을 정복한 거대한 제국 로마가 멸망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당시에는 아무도 없었다. 몽골고원을 넘어 유럽의 일부까지 재패했던 칭기스칸의 몽골제국, 종교적인 결속력을 바탕으로 수세기동안 세계를 호령했던 이슬람제국도 결국은 멸망하고 말았다. 로마를 비롯한 막강했던 제국들의 흥망성쇠를 연구하고 평가한 책 만도 수백 권에 이를 정도로 역사를 재조명하는 추세는 뚜렷하다. 국가는 물론이거니와 기업도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글로벌기업들도 몰락의 길을 걸어간 케이스는 무수히 많다. 미국 자동차업계를 주도하던 GM, 휴대전화 시장의 절대강자였던 모토롤라와 노키아, 세계 최고의 카메라/필름 제조기업이었던 코닥, 유통업계를 주름잡던 K-마트... 세계 100대기업 안에 들어있던 유수한 기업들이 불과 10년만에 반 이상이 탈락한다는 통계도 있다. 세계사 속의 거대한 제국들과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영원하지 못하고 몰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많은 학자들이 이를 연구하고 조사했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 평가는 다소 다르다. 나라의 경우에는 황금기에 사회의 부가 늘어나며 엘리트층이 부패하게 되고 계급간의 갈등도 늘어나며 계층간의 신뢰가 무너지게 된다고 한다. 기업의 경우에도 세상의 흐름을 읽지 못하거나 집단의 유대와 결속이 깨지기 시작하며 사세가 기울어지기에 신뢰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결국 권력집단과 지배세력의 오만과 나태함이 거대조직을 흔드는 것이다. 20세기 들어서면서 전세계를 움직이는 패권국가임을 자타가 공인하던 미국도 1990년대를 지나며 그 영향력이 약화된 것도 사실이다. 911사태 이후 걸프전 등 막대한 군비지출로 재정위기가 발생했고 현재에도 우크라이나에 막대한 지원금으로 연방정부는 재정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의 위협과 팬데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에 미국 경제도 휘청거리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트럼프 집권이후 여론은 양극화의 끝을 달리고 있다. 그외 노후화된 인프라, 계층간 갈등, 인종차별 등이 미국의 발목을 잡고 있다. 현대사회는 인터넷의 발달로 전세계가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스피디한 세상이 되었다. 한 나라의 불안정한 정치상황이나 글로벌 기업의 분기별 실적발표에도 전세계 금융시장이 파도를 친다. 전쟁중인 나라에서 찍힌 몇분짜리 동영상이 전체여론을 반전시키기도 한다. 이는 수백년을 지켜왔던 제국이나 수십년간 업계 선두를 누려왔던 기업을 몰락시키는데 가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반증이다. 하물며 CCTV화면이나 녹취록 정도면 잘 나가던 한 개인을 영원히 매장시키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것이다. 하늘아래 영원한 것은 없다는 진리가 실감나는 세상이다.
박성보 (전 기자협회)
2024-08-01 아침이슬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 처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 노래를 한번도 안 듣거나 불러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국민가요라고 불리기도 하고 군사독재로 암울한 시대에는 저항가요의 대명사 였다. 가수 양희은의 데뷔곡이기도 했던 이 '아침이슬'이 10년 넘게 금지곡이었다는 사실과 원곡자가 김민기라는 것을 의외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7,80년대 청년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대학가 주점이나 길거리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들을 흔하게 봤을 것이다. 본 기자도 학생 시절 동아리 회식이 끝나면 꼭 이 노래를 화음맞춰 부르고 모임을 마친 기억이 새롭다. 그 당시도 그랬지만 지금도 이 곡을 부르면 가슴이 벅차 오른다. 삶이 힘들때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가사에 위안을 받고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가사로 재 충전을 받았다. 또 한곡의 명곡이 있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역시 민중가요로 분류되는 김민기의 '상록수'라는 곡이다. 열린음악회같은 대형무대에서 합창단이 부르거나 한국을 소개하는 비디오클립에서 이 곡이 흘러나올 때는 마음이 울컥해지기도 한다. 그 외 '친구' '가을편지' '늙은 군인의 노래' 등 그의 노래는 거의 다 가슴을 파고드는 매력이 있고 울림이 있다. 노래는 아는데 얼굴은 모르는 가수 김민기가 지난달 지병으로 73세의 나이에 별세했다. 청년문화의 원형이자 저항의 상징이 된 사람, 극단 학전의 대표였던 그는 자기 자신을, '무대의 앞것'들을 빛나게 해주는 '뒷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지만 그림 대신 노래를 만들어 양희은, 김광석, 들국화를 키워냈고 학전이라는 지하극장에서 설경구, 황정민을 무대에 서게 했다. 문화예술계의 인재를 키워내고 돈이 안돼도 아동극에 몰두하다가 여생을 마친 김민기의 안타까운 소식이, 권력자를 끌어내리려는 세력과 이를 막으려는 치졸한 세력들의 싸움때문에 주요뉴스에서 뒷전으로 밀려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의 사망뉴스에 올라온 댓글 중 하나를 소개한다. # 선생님의 노래를 부르며 20대를 보낼 수 있었음에 감사드립니다. 물질적으론 가난했지만 정서적으론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정의와 순수로 가득했으며, 힘없는 작은 존재였으나 결코 작지 않았던 우리의 젊었던 때를 자랑스럽게 여기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박성보 (전 기자협회)
2024-07-01 내 나이가 어때서
한국사람들 만큼 나이에 민감한 민족이 있을까?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시작할 때도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것이 나이다. 간혹 동갑내기라도 만나면 마치 잃어버렸던 가족을 만난 듯 반가워하며 생일이며 가족 관계까지 캐묻고는 한다. 본인의 나이보다 적으면 대뜸 반말을 하고 나이가 많으면 '형님, 언니' 하면서 서열을 정리하기도 한다. 나이에 따라서 할 일, 못할 일도 정해진다. 누구나 한번씩은 들어봤을 말 중에 '나잇값을 못한다'라고 핀잔을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한국사람들은 나이를 중시한다. 10년 전쯤 국민 애창곡으로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대중가요가 있었다. 지금도 친목모임이나 노래방에서 자주 불려지는 곡이다.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인데~' 트로트 풍의 이 노래는 따라 부르기 쉽고 가사도 단순하여 특히 연세가 있는 노년층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고령화시대를 맞는 한국사회가 점점 복고풍의 멜로디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얼마전에 북가주에서 있었던 트롯트가수들의 공연에는 먼 거리임에도 천명이 넘는 관객들이 몰려 성황을 이룬것은 이를 반증한다. BTS와 블랙핑크가 K-POP 문화를 선도하며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려도, 기성세대들에게는 노래도 따라 부르지 못하는 먼 나라 문화일 수도 있다. 나이나 세대에 따라 다양성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에 고령화에 따른 노년층이 소외되지 않으려는 문화적 욕구는 계속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50대 나이에도 청년소리를 듣고 환갑이라는 단어가 사라진 듯 하며 70대에도 미인대회에 출전하는 시대에 이른것이다. 오늘도 동네골목이나 실내체육관에는 흰머리를 휘날리며 열심히 운동하는 노인들을 흔하게 본다. 현재 한국기준으로 전체인구 4명 중 1명은 60세 이상이고 조만간 3명 중 1명이 노인 인구가 되어 초고령화시대를 맞고 있다는 통계가 나왔다. 한국뿐만이 아닌 전 세계 선진국가들 대부분이 저출생과 노령사회에 관련한 사회적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오래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얼마나 질 높은 노년의 삶을 누리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노후생활에 대한 대책마련은 시급하지만 막대한 예산때문에 이렇다할 해법은 찾기 힘든 상황이다. 요즘 주위의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만나게 되면 공통화제는 역시 건강에 관한 얘기다. 혈압약을 복용하거나 당뇨관련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을 방문하여 건강검진이나 치과치료를 받고 오는 것도 많이 목격한다. 겉모습은 멀쩡해 보여도 나이는 못 속이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젊게 살고 싶다는 욕망은 누구나 갖고 있기에 이 노래 '내 나이가 어때서'가 국민 애창곡이 됐나보다.
박성보 (전 기자협회)
2024-06-02 역전 혹은 반전
스포츠경기를 볼 때 가장 짜릿한 순간은 내가 응원하는 팀이 지고 있다가 마지막에 역전하여 이겼을 때이다. 그래서 야구에서 9회말과 축구에서의 연장전은 관심이 집중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막판에 역전 홈런이나 결승골을 넣은 선수는 영웅으로 대접받으며 팬들의 환호를 받기에 충분한 이유다. 예전의 고교야구를 즐겨보던 올드팬들은 군산상고를 역전의 명수라고 아직도 머리에 떠올리며 추억을 하기도 한다. 스포츠분야는 그래서인지 경기가 끝날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뛰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가 통용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반전포인트가 극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 주인공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괴로워 하다가 여러가지 이유로 누명이 벗겨지거나 상대방을 압도할 때 시청율은 급등하게 된다. 이런 반전을 적당히 잘 묘사하거나 극적으로 표현하는 작가나 감독은 인기를 얻고 몸값이 올라간다고 한다. 우리가 그동안 봐왔던 영화나 드라마 중 인기있고 화제가 되었던 작품에는 항상 반전이 숨겨져 있었다. 할리웃 영화나 요즘의 넷플릭스 드라마들도 이 공식은 변함이 없다. 시청자나 관객들은 이 반전에 매력을 느낄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세계의 역사나 우리네 인생사도 마찬가지로 역전과 반전의 연속으로 흘러왔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어느 시대든지 왕이 폭정을 일삼으면 분명히 백성 중 누군가가 일어나 반란을 일으켜 왕을 끌어 내렸다. 구약성경에 보면 직접적으로 왕을 제거하지 않아도 오랜 핍박가운데 상황이 반전되어 극적으로 왕에 오른 다윗같은 사람도 있다. 현대 정치사에서도 독재가들이 나중에 본인의 추종자들로 부터도 외면당해 처참한 최후를 맞는 것을 얼마나 많이 봐 왔던가. 그래서 권력은 한낮 일장춘몽이라고 서사하는 역사가들이 대부분이다. 거창하게 세계사를 논하기 전에 개인의 가정사에서도 이런 반전은 흔하다. 아버지 말이라면 곧 법인 것 처럼 여기던 시절이 있었고 아직도 일부 나라나 특정한 계층의 가문에서는 가장의 권한이 막강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인식도 변하여 아버지의 권한과 역할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고독사에 이르거나 자살을 택하는 5.60대 남자들 대부분은 한때 목소리 크고 엄한 아버지였을 가능성이 높다. 가슴 아프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고 가족들과 화해의 손짓을 먼저 보내는 용기도 필요한 때다. 스포츠경기나 사업적으로 역전을 노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놓치는 것이 있다. 역전의 기회가 오기까지는 수많은 자기관리와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회가 왔을때 치고 나갈 역량과 기술, 의지가 있어야만 역전도 성공할 수 있다. 로토에 당첨되기 위해서는 최소 1장이라도 사두고 추첨을 기다려야 하고, 사업을 시작하려면 자금확보나 관련지식을 공부한 다음에야 시작해야 한다. 역전이든 반전이든 준비된 사람한테만 주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박성보 (전 기자협회)
2024-05-01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20여년 전 화제가 되었던 공포영화 'I Know What You Did Last Summer'의 한국어 제목이다. 1973년 로이스 덩컨이 썼던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당시 미국의 10대 문화를 풍자한 내용으로 할리우드영화계에서도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4명의 주인공들이 젊음을 만끽하며 음주운전을 하던 중 프리웨이에서 사람을 치어 죽이고 시체를 물속에 빠뜨려서 완전범죄를 공모한다. 하지만 누군가에 의해 주인공들이 차례대로 처참한 죽음을 맞이 한다는 무서운 스토리다.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내가 지난 여름에 어디를 갔었고 누구와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속속들이 다 아는 세상이 되었다. 누군가가 나의 신상정보와 취향까지 알아서 유튜브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영상이 나오고 아마존에서는 내가 좋아할 만한 상품들이 추천된다. 그만큼 세상은 편해졌는데 개인정보를 악용한 각종 범죄에 노출된 것도 사실이다. 어느누가 내 전화번호나 이메일 주소만 알아도 스팸문자와 사기전화를 받을 수 있다. 내 크레딧카드 넘버만 흘렸어도 누군가는 나도 모르게 내 카드로 쇼핑을 한다. 범죄에 관련된 경찰의 수사에서도 이 방법은 역으로 이용된다. 피의자의 통화기록을 확인하여 누구와 공모를 했으며 움직인 동선이 파악된다. 평소 컴퓨터에 어떤 단어를 서치했었는지 알아보면 범행동기와 의도를 짐작할 수 있기도 하다. 그래서 뉴스에서 보듯이 압수수색으로 개인PC나 셀폰을 확보하는 것이 현대식 초동수사의 기본수칙이 되었다. 누군가와 중요한 통화를 할 때도 몰래 녹음을 하여 향후에 증거자료로 제출되거나 협박용으로 쓰이는 무서운 세상이다. 휴대용전화기(셀폰 혹은 핸드폰)가 개발된 것은 30여년 전이지만 요즘처럼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스마트폰의 역사는 20년도 채 되지 않는다. 요즘 초등학생들과 홈리스들까지 다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은 현대인들이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물건이 되었다. 스마트폰으로 마켓이나 식당에서 결재를 하고 식당메뉴도 QR코드를 폰카메라로 찍어서 봐야 한다. 체육관에 운동하러 갈때도 폰화면을 내밀어서 회원임을 인증해야 들어갈 수 있다. 교회에도 무거운 성경책과 찬송가 대신 스마트폰만 들고 간다고 한다. '왕이 되려면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는 말 처럼 생활의 편리함 속에서 그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최근에는 AI기능이 탑재된 스마트폰이 나왔다. 사진을 알아서 예쁘게 편집해주고 글이나 보고서를 대신 써준다. 그러는 사이 웹디자인을 공부한 사람과 신문기자들이 직장을 잃는다. 노인들도 이동을 할때 승용차가 필요없이 폰으로 우버를 부르면 된다. 그 대신 그 많던 택시들과 운전사들도 사라졌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유럽을 여행중인 친구와도 실시간 문자를 주고 받는다. 그 대신 예전처럼 정겨운 목소리로 통화하는 반가움이 사라지고 있다. 몇년 전 한국에서 인터넷을 공급하는 KT지사가 화재로 인해 통신이 마비된 사건이 있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공중전화를 찾아 헤매고 식당과 가게들은 카드결재가 안돼 외상으로 계산을 했다. 당시 한국으로부터 지인이 샌프란공항에 도착을 했는데 카톡서비스가 중단되어 만나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사고를 보도한 기사중에는 '지난 주말 서울 중심가 일대가 석기시대가 됐다'는 표현도 등장했다. 홍수나 지진, 전쟁이나 전염병보다 더 무서운 것이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없는 세상이라고 비꼬는 말에 공감이 가는 내 자신이 씁쓸하기까지 하다. 박성보 기자 샌프란시스코 저널
박성보 (전 기자협회)
2024-04-02 나이가 들수록 왜 고집이 세질까?
"젊은것들이 뭘 알아. 내가 다 경험해 봤는데 내 말이 다 맞아" 나이드신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자주 나오는 말이다. 물론 오랜인생을 살면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경험치에서 나오는 삶의 지혜이기에 존중되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세상에는 본인의 경험 가지고만 해석이 되지 않는 부분이 훨씬 더 많다. 더구나 정보의 홍수시대에 스마트폰으로 바로 서치에 들어가면 백과사전 수 십권의 내용을 찾아볼 수 있는 세상에서 본인의 상식과 주장만을 내세우는 것은 아무래도 넌센스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 주장이 세지면서 남의 의견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노화현상이라고 한다. 나이가 들면 사고(思考)가 굳어지면서 자기가 해왔던 것들 만을 고수하고 신념과 가치를 따르려다 보니 고집이 세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신체적으로도 이전만큼 활성화되지 못하게 되니 그것으로 부터 오는 자기방어 현상이 생기는 것이라고도 한다. 단편적으로 복잡한 스마트폰 기능을 배우려고도 하지않고 패스트푸드점의 키오스크를 거부하고 직접 오더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더구나 미주지역에 오래전 이민을 왔던 1세대 어르신들을 대하다 보면 당신이 이민오던 시절에서 생각하고 겪었던 기억들로 머물러 있는 것을 본다. 당시에는 인터넷도 실시간 TV도 없던 시절이라 조국 한국의 돌아가는 세상물정과 정보가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인지 당시의 새마을운동과 삼청교육대 얘길 들려주시기도 하고, 국가기관 명칭도 중앙정보부나 안기부(현국가정보원), 외무부(현 외교부)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문화적인 면에서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젊은시절에 듣던 음악을 평생 듣고싶어 한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도 나훈아가 노래를 제일 잘 부르고 김지미가 가장 이쁜 영화배우라고 믿는 분들이 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라디오 스테이션에서 7,80년대 노래만 나오는 곳이 많고 엘튼 존과 빌리 조엘의 콘서트는 지금도 성황리에 계속되고 있다. 4천년전에 지어진 피라미드에 기록된 글들 중에는 '요즘 젊은것들은 버릇이 없다'라는 문구가 있다고 한다. 그 옛날에도 세대차이는 있었고 앞으로도 청년들과 노인들 간의 간격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의학이 발달하여 100세 시대를 살아가며, 나이들면서 고집이 세지는 노화현상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고 무엇이든 배우려고 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노년을 풍성하게 만든다고 학자들을 강조한다. 배우기 어렵지 않은 악기를 연주해보는 것이나 골프 등 운동을 시작하는 것도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위해 좋은 선택일 것이다. 주변사람들도 '그것은 틀렸어요'라고 대립적인 상황을 만들지 말고 서로의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 조정하고 순응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다. 박성보 기자
박성보 (전 기자협회)
2024-03-03 투표 안할거면 정치얘기 하지 마세요
요즘 미국이나 한국뉴스에는 온통 선거얘기로 가득하다. 올해 미국의 대통령선거와 한국의 국회의원선거가 있는 해 이기도 하지만, 언론사들은 정치인들의 싸움을 부추겨서 시청율을 높이려는 의도가 있기는 하다. 미국 대선의 경우 본선도 아니고 동부 작은 주의 예비선거 득표현황과, 한국의 지방도시 공천상황까지 다 알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더군다나 우리같은 이민자들은 한국의 선거권도 없이 국회의원 선거에 관심을 갖거나, 미국시민권도 없이 미국 대통령선거에 침튀기며 논쟁할 필요가 없기는 하다. 우리가 알듯이 미국이란 나라 자체가 수많은 이민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계 미국인(Korean-American)으로 다른 민족보다 인구수는 많지 않지만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하는 큰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창피하게도 다른 소수민족 커뮤니티에 비해 투표참여율은 항상 뒤진다. 한인 2세 정치인들을 키워 한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자고 외치면서 막상 그것을 결정짓는 투표에는 참여하지 않는 우를 범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라고 말한다. 대다수 민주주의 국가들이 부패한 권력을 막고 본인의 의사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투표라는 방식을 통해 대표를 뽑는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본인의 권리는 포기한 채 남 탓만 한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지도 않았으면서 뽑힌 대통령 욕하고, 본국 재외동포선거에 등록도 하지않고 불편해서 투표 못하겠다고 하고, 한인회장 선거에 참여도 안하면서 당선된 사람 자격없다고 소문낸다는 사실이다. 북가주내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숫자가 10만명이 넘는다고 우리는 알고 있고 또 그 숫자 만큼의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투표에 참여하여 진정으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수 천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그냥 거주인의 숫자에 포함되는 아무 힘도 없는 이민자일 뿐이다. 미국 이민역사 100년이 넘는동안 연방상원 의원은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하고 그나마 연방하원의원 5명 중 4명은 최근 몇 년내에 선출되었다. 최근 한 정치력 신장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통계에 의하면 미국내 한인들 중 시민권자 비율이 60%를 넘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출생한 2세, 3세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시민권자들의 비중이 높아지는 양상이라고 했다. 이럴때 한인들이 결집하여 정치인을 키워내서 고위직에 앉히거나 하원의원을 넘어 상원의원도 배출해야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우리가 사는 동안 한인대통령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하는 강연자의 마지막 말이 인상 깊었다. 대표적 자본주의국가인 미국에서 선거에 나가려면 돈은 꼭 필요하다. 선거자금을 못 낼 형편이라면 투표라도 하면서 한인정치인을 키워나가자고 해야지, 이도 저도 아니면서 말로만 현실정치를 논할 수 는 없다. 뒷방에서 친목회 감투싸움 그만하고 그 시간과 열정을 차세대 정치인들을 키워내며 우리의 목소리를 내는것이 정치력을 키워나가는 길 임은 틀림없다. 투표 안 할거면 정치얘기라도 하지 마세요.
박성보 (전 기자협회)
2024-02-04 새해에 복을 많이 받을 가능성은?
새해가 시작되거나 설날에 즈음하여 주고 받는 인사말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미국이나 영어권 국가에서는 'Happy New Year' 라고 인사를 하고 웬만한 국가들도 '새해를 축하한다'는 의미의 인사를 나눈다. 유독 우리 민족은 상대방에게 복을 받기를 기원하며 정감어린 인사를 나눈다. 어른들에게는 세배까지 드리며 건강을 기원하는 덕담을 건네기도 한다. 과연 여기서 복(福)의 의미는 무엇일까? 운수나 행운은 물론 삶에서 누리는 행복을 의미한다는 것이 보편적인 해석이다. 한국사람들은 아내를 잘 만나는 것도 복이요, 이가 튼튼한 것도 복이라고 여긴다. 이렇듯 무의식 중에 복을 빌면서 살아가고 있는 있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한국인들에게 복이란 오래 사는 것(壽), 부자가 되는 것(富), 출세를 하는 것(貴), 자식을 많이 두는 것(多子) 등이다. 물론 복이란 개념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민족마다 종교마다 복을 다르게 정의하기도 한다. 기독교에서도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복의 의미가 다르게 해석된다. 하지만 여기서 넓은 의미에서의 복이란 현대인들에게는 가족들이 건강하게 오래살고 경제적으로 풍요를 누리며 본인이 추구하는 바를 이루는 것이 아닐까 싶다. 즉 삶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 행운이고 복이라는 것이다.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을 하고 범죄나 사고로 부터 자유로우며 물질의 넉넉함을 느끼며 사는 것이 일반적이고 기본적인 복이라고 정의할 때, 과연 새해에는 우리가 모두 이 복을 받을 수 있을까? 팬데믹 후 세계정세와 경제상황을 고려해 볼 때 그다지 희망적이진 않다는것이 현실이다. 아직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하마스와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앞날을 정확히 예측하기도 어려운 시기인 것이다. 세계의 중심인 미국경제가 인플레이션이라는 긴 터털을 빠져나왔다고는 하지만 중국의 경제적 위협이 상존해 있고 경제성장율도 낮아서 경기침체는 계속 될 것이라는 경제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혹한과 홍수, 지진 등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자연재해가 앞으로도 지속되며 환경오염으로 인한 지구의 재앙도 경고하고 있다. 올해는 특히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 등 정치적 변혁기라고 볼 수 있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앞서기 전에는 사회적 혼란이 기정사실화 된다. 여기에 고질적인 이념논쟁과 사회적으로 약자라고 여기는 세력들이 거리로 나오는 상황도 예측된다. 비상식적인 총기난사나 과격분자들의 테러도 증가일로에 있어서 사회는 더욱 불안이 가중될 것이다. 예전부터 우리가 살고있는 샌프란시스코와 베이 지역은 여름에도 선선한 날씨와 안전하고 깨끗한 환경으로 인해 가장 가고싶은 관광지 1위를 고수하던 곳이었다. 요즘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을 방문해본 사람들은 느끼듯이 노숙자들의 텐트와 지저분한 거리, 스트릿파킹 중 깨진 차유리들이 즐비하다. 렌트비 비싼 동네에서 살고있다고 복 받았다고 부러워하던 타지역 친구들은 복이 없는 것이었을까? 복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인사를 건넨다.'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박성보 기자 샌프란시스코 저널
박성보 (전 기자협회)
2024-01-01 먼저 간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하늘도 슬피울 듯 당신의 장례식엔 비가 내렸어요. 생각보다 많은 조문객들이 찾아와 애도하며 함께 눈물을 흘렸지요. 당신이 지휘했던 합창단 단원들, 섬기던 교회의 교우들, 함께 찬양사역을 했던 옛 동료들, 당신께 피아노를 배우던 학생들까지... 그동안 내 그늘 안에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와서 보니 당신의 그늘안에 내가 있었네요. 결혼 전부터 찬양사역을 함께 한 동지였던 우리가 정말 바쁘게 살아왔던 것 같아요. 반주자가 없어 예배드리기 힘든 교회를 찾아가 도와주고, 영성훈련캠프에 들어가 며칠간 하루 수 십곡씩 연주를 강행했고, 결혼식과 장례식에서 앙상블 연주를 했지요. 또 합창단 정기공연과 제자들의 피아노 연주회 등 무슨 행사가 그리 많았는지... 무거운 키보드와 음향장비 챙기면서 투덜거리던 기억이 나네요. 당신이 암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시작했을때도 나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어요. 중학생때 부터 성가대 반주를 시작하여 평생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살아왔는데 이런 사람을 먼저 데려가실리 없다는 확신 때문이었지요. 또한 성가대원을 포함한 온 성도들이 매일 당신의 회복을 위해 기도했고 치료도 성과가 있어서, 우리가 남은 여생을 어떻게 보람있게 살 것인가를 조심스럽게 계획했었잖아요. 그래서 애써 담담한 모습을 보이며 당신의 병간호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웬만한 간호사보다 환자를 잘 돌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보였구요. 당신 앞에서는 거의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것도 내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당신이 더 힘들어 할까봐 매번 통증때문에 괴로워 하면 완전히 회복될텐데 왜 약하게 그러냐고 핀잔을 주던 때도 많았어요. 그러던 내가 눈물샘이 터진것은 키모치료 때문에 머리가 빠질 때 였어요. 듬성듬성 남아있던 머리카락을 바리깡으로 밀어주고는 "당신 머리통이 동글동글해서 머리를 밀고나니 훨씬 더 이쁘다"고 칭찬해 주고 병원문을 나선 후 집으로 오는 내내 울음을 토해내고야 말았어요. 하늘을 향해서 원망과 섭섭함을 토로하면서, 내가 해줄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음을 한탄하면서 말예요. 그때부터 터진 눈물샘은 누가 위로의 말 한마디라도 건네거나 어깨만 다독거려줘도 주루룩 눈물이 나는 바람에 바지 뒷주머니에 항상 휴지 몇 장을 챙겨다니는 버릇이 생겼어요. 당신이 숨을 쉬기 힘들어 할 때, 수술실로 들어갈 때,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할 때도 나는 뒤돌아서 눈물을 흘렸지요. 장례가 끝나고 식구들과 당신의 유품들을 정리할때도, 당신 전화기에서 지난 사진들을 지워가고 있는 지금도 나는 휴지가 필요해요. 언젠가는 그 눈물이 마를날이 있겠지만 당신한테 좀 더 잘해주지 못한 기억들이 되살아 나는 현실앞에 멈출 수는 없을 듯 해요. 1년 반 가량의 투병생활을 거치며 나 또한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많이 성장한 것 같아 뿌듯해요.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눈에 보이고 특히 간병하는 사람들의 고된 생활도 이해하게 됐고, 하나님의 계획은 사람이 알지 못한다는 겸손함도 생겼구요. 당신의 회복을 위해 기도해준 많은 목사님들과 성도들, 매주 전복죽을 끓여다 주신 집사님들, 누군지도 모르지만 집앞에 음식과 꽃을 놓고간 사람들을 위해서 이제는 내가 은혜를 갚아야 할 때 인것 같아요. 요즘 몇몇 지인들이 하는 말이 사랑을 듬뿍 받고 고통없는 천국으로 갔는데 그만 슬퍼하라고... 그런데도 당신을 더 사랑해 주지 못하고 지켜주지 못한 내면의 죄책감은 씻을 길이 없네요. 당신을 사랑했고 앞으로도 사랑할게요. 다시 만날날까지 예전의 이쁘고 웃는 모습으로 기다려줘요. 당신의 남편이자 동역자였던 박성보 보냄
박성보 (전 기자협회)
2023-11-01 젖과 꿀이 흐르던 땅에 피가 흐른다
지금으로 부터 약 4천년 전 중동 지역에 한 자식이 없는 노인이 살았다. 그가 믿는 여호와라는 신(神)은 이 노인에게 "너로 인해 큰 민족을 이루고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다"라고 약속했다. 현재 세계인구 약 80억명 가운데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60억명 정도라고 하는데, 그 중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 유대교를 믿는 신자의 수를 합하면 40억명 이라고 한다. 이 40억명 신자들이 믿음의 시조로 모시고 있는 사람이 위에 언급한 노인인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이다. 이 아브라함이 늦게 얻은 아들 중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 자손이 번성하게 되는데 한 갈래가 '이스마엘'로 이어지는 아랍민족(이슬람권)이고, '이삭'으로 이어지는 유대인이 현 이스라엘를 포함한 기독교의 본류라고 구분 짓는다. 가뭄으로 인해 먹을것이 없었던 아브라함의 후손들 중 이삭계열은 이집트로 이주했고 백성이 많아진 이들은 이집트를 탈출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 즉 현 팔레스타인 지방을 정복하고 정착하게 된다. 물론 그 이후 이스라엘 민족은 나라가 망하고 세계 곳곳에 흩어져 2천년 동안이나 나라없는 디아스포라 신세로 살다가 1948년에야 현 팔레스타인 지방에 '이스라엘'을 재건국하게 된다. 종교적으로 민족적으로 다른 주변의 아랍국가들과 여러차례의 전쟁을 치루기도 했지만 미국과 서방국가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군사력을 키워왔다. 또한 영토내에 팔레스타인 자치구역인 가자지구를 둘러싸고 잦은 무력충돌로 중동의 화약고로 알려져왔다. 지난달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인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대한 사상 초유의 공격을 감행하여 수천명이 희생되었고, 이스라엘도 보복 공습으로 양측 모두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최악의 사태를 맞고 있다. 앞으로가 더 걱정인 것은 주변의 아랍계 국가들이 참전을 준비하고 있어서 이는 3차 세계대전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는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세계의 경찰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미국이 중동지역에서의 영향력이 떨어지고 상태에서 산유국이 대부분인 주변 이슬람권 국가들이 향후 어떤 자세를 취하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진다. 요즘 국제외교의 현실은 예전보다 복잡미묘해졌다. 자국의 이익이 우선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집권세력의 정치적 입장, 국민들의 여론, 주변국들의 반응, 종교적 명분 등등 고려해야 할 부분들이 너무 많다. 더구나 중동지역은 산유국들이 많기에 세계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국제유가를 둘러싸고 각국들의 입장이 다른 것이다. 팬데믹을 거치며 가뜩이나 인플레가 높아진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이들과 전혀 관계도 없는 나라 국민들까지 개스비를 걱정하게 되었다. 종교를 떠나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한 형제였던 이들이 화해와 공존을 택하기를 기원할 뿐이다. 박성보 기자 샌프란시스코 저널
박성보 (전 기자협회)
2023-10-01 지루한 한인행사 이제 그만
지난 2년여에 걸친 팬데믹 상황은 우리 생활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전세계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은 나라가 없고 사회적으로 타격을 받지 않은 분야도 거의 없다.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을 거치면서 특히 문화계는 암울한 터널을 지나가는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영화계와 음악계, 예술계 등이 불황을 맞으면서 수많은 관련종사자들이 다른 직종을 찾아 나선 시기이기도 했다. 웬만한 극장이나 공연장들이 문을 닫았고 비대면의 문화는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라는 새 공룡매체를 등장하게 했다. 극장에 직접 가지 않아도 넷플릭스나 유튜브로 영화나 음악을 보고 듣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비록 화면은 작지만 고화질의 영화나 드라마, 뉴스나 예능프로그램을 장소에 구애없이 즐길 수 있게 됐다. 문화강국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한국 역시 시대의 변화에 맞춰 '오징어 게임' 등 화제의 드라마를 탄생시킨 것도, 수많은 유튜버들이 활동하게 된 것도 결국은 팬데믹을 벗어나려는 자구책이었던 것이다. 이제 마우스 클릭 몇번 만, 셀폰화면 터치 몇번이면 세계 곳곳의 유명 아티스트의 연주실황이나 수준높은 공연을 시도때도 없이 볼 수 있게 되었다. 다행히 팬데믹을 벗어나며 오프라인으로 공연도 재개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온라인으로는 느낄수 없는 현장감이 있어서인지 대형 무대공연도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최근 샌프란시스코 오라클파크에서 열린 한국걸그룹 '블랙핑크'의 공연이나 산타클라라 리바이스스타디움에서 열린 '테일러 스위프트'의 공연에는 수 만명의 관객들이 열광하는 성공적인 콘서트로 기록됐다. 예산이나 규모를 보면 비교도 할 수 없지만 한인사회에서도 이런 문화공연들이 서서히 기지개를 피면서 시작되고 있다. 한인합창단이나 클래식연주자, 대중음악인들이 작은 무대를 만들어 관객들을 모으고 있지만, 적은 예산이나 관심도가 낮아서인지 아직 이렇다할 성과는 내지 못하는 분위기다. 예전처럼 각지역 한인회가 주최하는 '한국의 날 문화축제'들이 본격적으로 시작을 못하기도 했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식상한 전통부채춤과 삼고무 공연만으로는 관객들을 감동시키기에 역부족이고, 지역의 K-POP 댄스팀의 공연도 유튜브로 보던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기엔 유치하게 보일 것이다. 꼭 관현악 오케스트라가 협연하는 음악회나 유명 대중가수가 아니더라도 기획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재미있고 성공적인 공연이 될 수 있다. 예산만 탓하지 말고 제대로 준비해서 짜임새있는 연출이면 천 명 관객정도의 공연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관객들도 무료로 보겠다는 근성을 버리고 기꺼이 그 댓가를 지불하겠다는 합의가 있어야 성사된다는 전제가 있기는 하다. 박성보 기자 샌프란시스코 저널
박성보 (전 기자협회)
2023-09-01 지루한 한인행사 이제 그만
팬데믹으로 인한 오랜 공백기를 지나며 한인사회 각종 행사들이 다시 열리고 있다. 3.1절 등 국경일 기념식과 북가주내 각 지역 한인회가 주최하는 회장 취임식 등 그동안 열리지 못했던 행사들이 한꺼번에 무더기로 개최되고 있다. 몇 년간 못보던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안부를 묻는 등 정겨운 풍경과 지역 한인들이 다시 결집을 하는 모습을 보며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거의 모든 행사의 공통점이 있는데 너무 지루하다는 것이다. 행사의 격(?)을 높인다는 취지로 참석한 한인단체장들에게 돌아가며 축사나 인사말을 시키는데 많을 때는 10명이 넘기도 한다. 보통 2분 내외로 간단한 내용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혼자 5분 이상을 소요하며 주절주절 본인의 얘기를 늘어놓는 사람도 있다. 그러다 보면 축사하는데 걸린 시간만 30분을 넘기며 참석자들이 짜증을 내기도 한다. 행사의 진행패턴은 비슷하여 주관하는 단체장이 행사의 의미를 설명하는 인사말을 하고 난 후에는, 이지역 본국정부의 대리인 격인 총영사의 인사, 북가주내 각 지역의 한인회장들이 돌아가며 인사, 민주평통이나 유력한 한인단체장들의 인사가 이어진다. 여기에 더해 각 지역 노인회장, 해당지역 주류정치인들 까지 가세하면 10명이 쉽게 넘어가는 형태이다. 지역 특성상 1시간 이상의 이동거리를 감안할 때 바쁜일정을 쪼개어 멀리 찾아간 사람들이 지루하게 하나마나한 소리만 듣다가 오는 것이다. 간혹 행사의 사회자는 친절하게 참석한 거의 모든 사람들을 일일이 소개하며 존재감을 확인시켜 주기도 한다. 주최측은 행사 참석인원을 확보하려고 각 지역 노인회원들과 청소년단체의 학생들까지 동원하기도 하는데, 한국말이 서투른 어린 청소년들은 더욱 지루할 것이고, 영어로 대화가 힘든 어르신들에게 주류정치인의 장황한 영어연설은 화장실에 갈 핑계를 주기에 충분하다. 몇몇 단체들은 이와같은 불합리한 행사운영을 자각하고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파워포인트를 이용하여 행사의 진행을 빠르게 하고, 축사나 인사말도 영상으로 제작하여 틀어주는 등 업그레이드 시키는 분위기다. 행사 중간에 축가나 문화행사를 끼워넣어 지루함을 덜어주기도, 사회자가 연설시간을 자제시키는 강제력도 동원한다. 행사장에 커피와 음료, 간단한 다과를 준비하여 자유스럽게 행사를 관람할 수 있게 하기도 한다. 비싼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는 클래식 공연에서도 관객들의 지루함을 덜어주기 위해 중간에 매직쇼를 하는 마당에 언제까지 옛날 방식의 행사를 고집해야 하는가. 얼굴도장 찍으려고 참석하는게 아니라 의미있고 재미있는 프로그램 때문에 자진하여 참석하는 행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주최측은 행사진행을 고민하는 시간과 자문을 구하는 등 노력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시대가 바뀌고 있어서 아까운 시간을 지루하게 보낼 사람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성보 기자 샌프란시스코 저널
박성보 (전 기자협회)
2023-08-01 공감(共感)능력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주위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서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다.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하고, 특히 사회적으로 성공하려면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빨리 알아채는 것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능력이기도 하다. 요즘 뉴스나 드라마에 '공감능력'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부부사이, 친구나 동료사이에 이 공감능력이 없어서 갈등을 겪는 사례가 많이 소개되기도 한다. 공감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empathy'의 어원은 'Einfhlung'(Ein:안으로, fuhlung: 느끼다)라는 독일어에 기원을 둔 것으로, '타인의 마음, 타인의 감정, 타인의 현재 상태에서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생각을 내가 그 사람의 입장으로 들어가서 느끼고 지각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감정이입 또는 고사성어 중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의 특징이 있다.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상대와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한다고 한다. 또한 친구관계가 깊지 않고 약속시간을 잘 지키지도 않는 사람들도 이 범주안에 든다. 감정의 공유가 어렵다보니 결과적으로 소통이 잘 되지않고 불편한 관계가 이어지는 것이다. 부부사이에 대화가 거의 없고 직장동료들과 갈등을 자주 일으킨다면 공감능력이 떨어졌다고 보면 된다. 회사나 단체의 지도자가 이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면 일이 복잡해진다. 직원들의 공통된 인식과 욕구를 나몰라라 하며 회장이 하고 싶은 말과 행동만을 고집하면 그 조직이 발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노사갈등이 생기고 단체의 경우는 조직이 와해되는 사례도 많이 발생한다. 시대가 변하여 독단적이고 일방적인 리더십을 무조건 따르는 조직원은 이제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하물며 공감능력이 발달하지 못한 사람을 국가의 지도자로 선출하는 것은 그 자체가 매우 위험한 선택이다. '함께 살아가는 능력'이 국가 운영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이렇게 말했다. "공감한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의 처지가 되어 보는 것이다. 우리와 다른 사람의 눈으로, 배고픈 아이의 눈으로, 해고된 철강노동자의 눈으로, 기숙사를 청소하는 이민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일이다" 라고.. 명문 대학을 졸업했다고, 박사학위를 갖고 있다고, 대기업의 간부라고 하여 무조건 선호하며 좋은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오산이다. 주입식 교육과 과잉경쟁으로 만들어진 시대적 영웅들은 오히려 교만해져서 이 공감능력이 일반인들 보다 더 떨어질 수도 있다. 겸손한 마음으로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고 감정을 헤아려주며 친절하게 대해주는 따뜻한 지도자들을 기대해 본다. 박성보 기자 샌프란시스코 저널
박성보 (전 기자협회)
2023-07-01 성격 테스트
사람들을 성격별로 분류하는 것은 단순한 것 같지만 많은 자료와 경험치를 요구한다. 요즘 인기있는 MBTI 테스트를 통해 성격의 유형을 나누기도 하지만, 이것도 16가지로만 분류되고 할때마다 다른 결과가 나오는 오류가 있기도 하다. 그래서 네 종류밖에 되지않는 혈액형별로 성격을 판단하거나, 무슨나라 국민들은 어떻다고 단정짓는 것은 정확성을 떠나 편견을 부추길 수 있어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자라온 성장과정이나 현재의 직업을 갖고 성격을 판단하는 것도 정확도는 높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수긍이 가는 면이 많다. 어린시절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고 가족의 사랑을 많이 받지 못했다면, 성장하여 사회생활을 하더라도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반대로 부유하고 뭐든지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다면 자칫 이기적이고 버릇이 없다는 말을 듣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본인에게 가장 영향력있는 사람, 즉 부모나 형제,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 그들을 성격적으로도 닮아갈 수도 있다. 이렇듯 현재의 성격을 갖게 된 배경은 수많은 세월과 경험에서 나올수 밖에 없다. 직업적으로 단순하게 소개하자면.. 의사는 모든사람을 병에 걸린 사람과 건강한 사람으로 구분하며 몸의 이상신호가 있다면 그에 대한 처방과 치료에 관심을 둔다. 식당관계자라면 내 음식이 손님들에게 얼마나 반응이 있을지를 고민하며 매일의 매상체크에 관심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국회의원은 지역주민의 고민을 듣기도 하겠지만 최대 관심사는 다음 공천을 받는것과 한번 더 당선될 것이냐에 있다. 검사나 경찰관들 은 죄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구분하며 모든 사람의 흠이 무엇인가를 찾게 되어있다. 사업가일 경우 동물적인 본능으로 새로운 사업의 승패를 진단한다. 목회자라면 새 교인이 본교회에 정착할 성도인지 아닌지 어느정도 가늠할 수 있다. 건축가나 공사전문가들은 눈대중으로도 견적과 공사기간을 판단한다. 경력있는 골퍼라면 가진 클럽과 첫샷 치는것만 봐도 상대의 실력을 파악한다. 그외 음악가도 미술가도 농사짓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전문분야에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해박하다. 하지만 디지털시대를 살아가면서 가짜가 진짜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는 것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유튜브로 배운 자동차 수리기술이 정비소직원보다 뛰어날 수도 있고, AI를 이용한 그림이나 사진이 실물보다 더 아름답게 느낄 수도 있다. 평범한 일반인이 가수보다 더 노래를 잘 부르고, 시사를 다루는 유튜버가 정치인들보다 더 영향력이 있는 것은 놀라울 일도 아니다. 한 분야에서 오래 일했다고, 대학에서 관련학과를 전공했다고 자만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박성보 기자 샌프란시스코 저널
박성보 (전 기자협회)
2023-06-01 권력의 메커니즘
권력(權力,Power)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권력의 정의부터 알아보면 '타인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을 의미한다. 작은 의미에서 보면 부부사이에도, 부모와 자식사이에도 권력이 존재한다. 물론 시대가 변하여 남편에서 아내로, 부모에서 자식에게로 권력이 이동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큰 의미로서의 권력이란 국가나 정부가 국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강제력을 말한다. 남들보다 더 높은자리, 힘있는 자리를 탐하고 그것을 위해 수많은 권력투쟁이 있었다는 것은 지난 역사가 말해준다. 그럼 최고의 권력자는 누구일까? 예전에는 한 나라의 왕이었고 지금 시대에는 대통령이나 수상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대통령이나 각 부처의 장관들은 권력을 무제한으로 휘두를 수 있냐는 의문이 들 것이다. 현대시대의 권력구조는 생각보다 복잡미묘하게 얽혀져 있어서 옛날의 왕정시대 보다는 권한이 대폭 축소되었다.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를 예로 들면, 거대한 공룡기업이나 국민여론의 향방에 따라 국가권력이 제약을 받는다. 세계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미국의 대통령도 의료개혁이나 총기규제같은 문제를 결국은 해내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거대자본, 노조, 언론재벌 등 사회적으로 권력을 쥐고있는 기득권층 들에게 번번히 막혀서 자리만 지키다가 퇴임하는 대통령도 많았다. 한국의 전임 대통령 중 한명은 공개적으로 "대통령 못해 먹겠다"고 토로한 일화도 있다. 물론 공산국가나 일부국가 중에는 장기집권으로 권력을 누리던 대통령도 있었지만, 결국은 폭정에 못이긴 국민들의 봉기로 처참하게 물러난 독재자들도 많지 않은가. 최고권력자 옆에서 기생하는 가족이나 문고리 권력을 행사하는 자들도 최후에는 그다지 아름답지 못하게 막을 내린다. 그래서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명언이 설득력을 얻는다. 권력이 사람을 더 선하게 만든다고 주장하는 연구는 거의 없다. 오래전 스탠포드대 심리학과 연구진이 18명의 대학생을 모집해 9명에게는 간수 역할을, 9명에게는 죄수 역할을 맡겼다고 한다. 간수들은 곧바로 죄수들을 학대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소화기로 구타하고 콘크리트 바닥에서 자게 했으며, 죄수들을 줄세워놓고 수치심을 자극했다고 보고서는 기록되어 있다. 골목대장 노릇 하려고 경쟁자를 선거에 못나오게 만들거나, 회장자리 조금 더 지키려고 정관까지 고쳐서 물의를 일으키는 한인단체들을 보고 있노라면 쓴웃음 밖에 안 나온다. 또 한인단체장 한번 해 보고는 한국으로 가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실패하고 망가진 인사들을 보면 불쌍해 보인다. 미국의 한 작가는 그래서 '권력은 언제나 위험하다. 권력은 최악을 끌어들이고 최고를 타락시킨다'고 말했다. 박성보 기자 샌프란시스코 저널
박성보 (전 기자협회)
2023-04-30 그 입 좀 다물라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옛말처럼 입으로 밷는 말 한마디가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경우도 있다. 가족에서 부터 친구사이, 직장, 단체, 국가에 이르기까지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때 분란과 논쟁으로 발전되는 사례를 주위에서 흔하게 본다. 특히 말하는 사람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그 말의 파급력은 더욱 커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회원 몇 십명 되지않는 노인회에서 회원 한 명이 모임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면 임원들간에 회의와 절충을 통해서 해결이 된다. 하지만 선출된 회장이 자꾸 회원들을 이간시키거나 다른 단체들과 갈등을 일으키면 그 조직이 와해되기도 한다. 작은 단체라면 말로 야기된 갈등은 수습하는 것도 간단하지만, 대기업 총수나 한 나라의 지도자면 얘기가 달라진다. 쓸데없이 경쟁기업을 폄하하는 말을 언론에 흘리거나 다른 나라나 상대국 정상을 지칭하여 부적절한 언행을 했을 경우, 그 후폭풍은 고스란히 조직원이나 국민이 피해를 당할 수 밖에 없다. 역사에서 보더라도 왕이나 실권자의 말 한마디로 전쟁이 일어난 경우도 수 없이 많았다. 그래서 위치가 오를수록 더욱 말 한마디 한마디를 신중하게 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다. 예전에는 대기업 회장이나 국회위원, 대통령이 무슨 말실수를 하더라도 언론에서 적당히 완화시켜 표현하거나 삭제하여 보도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처럼 언론매체의 환경이 바뀌고 디지털화 된 장비가 등장하면서, 실시간 영상으로 수 십만명이 동시에 그 실수를 알아채 버린다. 문제가 된 영상이나 녹취록이 SNS를 타고 순식간에 일파만파로 퍼져나가기도 한다. 더구나 정파나 이해관계가 다른 매체나 유튜버가 개입되면 실수한 부분만 편집하여 확대시키기에 충분한 환경이 되었다. 몰래찍은 음란동영상처럼 온라인을 떠돌아다니면서 그 출처를 알기도 삭제시키기도 불가능해져 버린다. 통화목적으로만 이용되던 휴대전화기가 스마트폰으로 발전하면서 사회생활이 너무 편리해졌다. 카메라 없이도 고화질의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녹음기 없이도 대화나 통화내용을 녹음할 수 있다.그래서 1인 미디어시대가 열렸다고들 한다. TV나 신문을 보지 않아도 세상돌아가는 것을 폰으로 확인하는 시대다. 이는 누가 말실수를 하거나 부적절한 행동을 할 때 증거물이 될 취재도구를 누구나 다 갖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디지털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항상 말조심 행동조심을 해야 한다는 반증이다. 자신이 생각할 때 내 말의 영향력이 크다고 여길 정도의 위치에 있다면 차라리 그 입을 다물어라. 아무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일도 생기지 않으니까. 박성보 기자 샌프란시스코 저널
박성보 (전 기자협회)
2023-04-02 사이비 종교와 가스 라이팅
종교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한다. 수 천년간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등정통 종교가 주를 이루며 이어 내려 오고 있지만, 이름도 생소한 수 백개의 종교가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해왔다. 흔히들 '사이비 종교' 혹은 '이단'이라고 부르지만, 주류종교와 배치되는 교리를 가진 이단과 종교의 탈을 쓴 범죄조직인 사이비 종교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최근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가 화제를 일으키며 이 사이비 종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주의를 요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성범죄를 재연하고 신도를 폭행하는 영상이 이어지면서 시청하기에 다소 불편하기도 했지만,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시청률이 높아 사회적 문제로 번지는 분위기다. 사이비 종교 교주들의 경악스러운 실체를 폭로하는 내용으로, 젊은여성들을 성폭행하고 신도들을 노예처럼 착취하기도 했다. 오대양의 경우에는 32명이 집단으로 사망하기도 하여 충격적인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JMS의 경우 교주가 성폭행죄로 10년을 복역하고 출소한 후에도 최근까지 범행이 반복됐다는데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과연 이런 사이비종교에 멀쩡한 사람들이 왜 빠지고 실체를 알고도 못 헤어나올까 하는 의문이 든다. 심리학자들은 이같은 현상을 '가스라이팅'효과라고 표현한다. 스스로의 판단력을 의심하도록 만들어서 판단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도록 만드는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오은영 교수는 심리적 지배라고 부르기도 한다. 즉 교주가 하는 말은 무조건 맞고 군중심리를 이용하여 상대방을 세뇌하는 것이다. 순백색 양복을 입은 교주가 나타나 병자를 치료하고 수천명의 군중이 환호하는 분위기를 만들면, 대학교수는 물론 웬만한 지성인들도 심리적으로 위축되며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이비 종교가 한국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민사원, 옴진리교, 사이언폴로지교 등 국제적으로 굵직한 사이비 종교들이 인권유린, 집단자살을 자행했다. 통일교와 신천지같은 기독교를 빙자한 이단들도 젊은층을 대상으로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종말론을 강조하거나 거액의 헌금을 강요하고 성관계를 요구하면 사이비라고 볼 수 있다. 오직 자기 네 신도들만 구원을 받으며 반대하는 가족들과도 인연을 끊게 만들어 가족 전체가 붕괴될 수도 있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 사이비 종교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단체의 이름이 분명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신앙공부를 하자고 하거나 이를 주변에 알리지 말라고 한다. 또 유학생이나 혼자사는 외로운 처지의 상대에게 적극적으로 관심과 친절을 베풀어 친밀감을 높이기도 한다. 기존교회들이 하지 못하거나 등한시 하는 부분을 사이비 종교들이 파고드는 셈이다.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에 더욱 기승을 부리는 이 사이비 종교로 부터 자유스런 사람은 없다. 오래전인 1992년 10월 28일. 세상에 종말이 오고 신도들이 휴거되어 하늘로 들림받는다는 말에 속아서, 전 재산을 다 바치고 흰옷입고 옥상에서 하늘로 올라갈 순간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마약이나 도박처럼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가 정말 힘든것이 이 사이비 종교임을 명심하고, 가라지와 쭉정이의 비유처럼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 내는 지혜가 필요한 시기임에는 틀림없다. 박성보 기자 샌프란시스코 저널
박성보 (전 기자협회)
2023-03-02 ChatGPT가 열어놓은 AI시대
요즘 언론이나 대화의 모든 화제가 'ChatGPT'로 거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컴퓨터나 인공지능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뭔가 대단한 발명품이 나오기라도 한 듯 관심이 뜨겁다. 챗GPT를 쉽게 정의하자면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즉 사용자와 주고받는 대화에서 질문에 대해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상세한 답변을 해줘서 전문가들이 모두 놀랄 정도다. 논문이나 보고서 등을 제작하기 위해 뉴스나 자료를 수집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단번에 해결해주고, 변호사와 의사 등 전문가의 도움없이 상담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챗GPT의 개발사인 오픈AI에 10억 달러를 투자한데 이어 추가로 100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소식과, 구글, 메타를 비롯한 빅테크기업들이 앞다퉈 이 분야에 뛰어든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 존재감을 가늠할 수 있다. 인터넷 탄생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는 소프트웨어라는 긍정적 평가와, 사회 각 분야에 걸쳐 인간들의 영역을 침범해 갈 것이라는 우려가 함께 존재한다. 출시된지 두달만에 월 이용자가 1억명을 돌파했고, 챗GPT가 MBA와 변호사, 의사면허시험까지 통과했다는 뉴스가 이를 대변한다. 하지만 직접 사용해 본 사람들은 알듯이 아직 완벽한 단계의 답변이 나오는 것만은 아니다. 질문과 동떨어진 오답을 내놓기도 하고 내용이 복잡해지면 앞뒤가 맞지않는 문장이 나오기도 한다. 한국어로도 대화가 가능하지만 오류가 있거나 빈약한 답변이 상당히 많다.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가 입력되어 학습되어진 후 가장 그럴듯한 답변이 출력되는 것일 뿐 스스로 생각하여 답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민감한 의료정보나 법률지식도 정확성이 떨어지기에 무조건 의존하기 보다 팩트체크를 할 필요도 있다. 1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증기기관이 발명되었을때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기계가 빼앗아 간다고 비판을 했다. 그러나 20세기로 들어서면서 로봇들이 사회 각 전반에 걸쳐 사용되기 시작했고, 현재는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제품들이 기계화된 시스템에 의해 생산되고 있다. 2016년 세계 최고의 바둑기사로 평가받던 이세돌은 인공지능 알파고를 상대로 한 대국에서 4대 1로 패하여 AI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공상과학영화처럼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들이 인간을 지배할 날이 올지는 잘 모르겠지만, 과학이 상상 이상으로 급속하게 발전하는 것은 틀림없다. 박성보 기자 샌프란시스코 저널
박성보 (전 기자협회)
2023-01-31 뭣이 중헌디!
시대마다 유행어가 있다. 주로 영화나 TV드라마의 대사에서 나오던 말들이 일반 대중들의 공감을 얻어 비슷한 상황에서 자주 쓰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유행어가 되곤 한다. 사회학에서는 '세태어'라고 표현하며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분석한다. '느그 아버지 뭐 하시노' '너나 잘하세요' 등 비록 그 대사가 나오는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이 말들은 많이 듣거나 한 번쯤은 다른 사람에게 사용했을 것이다. 2016년 '곡성'이라는 영화에 등장하는 '뭣이 중헌디'라는 말은, 험한 일을 당한 딸이 속도 모르고 이것저것 묻는 아버지(곽도원)를 답답해하며 푸념하듯이 내뱉은 전라도 사투리 대사다. 후에 트로트가수 임영웅이 동일한 제목의 노래를 발표해 인기를 얻기도 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결정장애'를 겪는 사람들의 역설적 세태를 반영하는 말이라고 보면 된다. 그럼 과연 무엇이 중요한가? 나한테는 중요한 일이 남들한테도 중요한 일 일까? 다들 중요하다고 하는데 나는 중요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인가? 이런 의문들이 들 것이다. 특히 개인주의가 팽배해지고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 현대사회에서 일률적인 가치판단을 한다는 것은 넌센스일 수 밖에 없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니 너도 중요하게 생각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이 시대에서는 안 어울리는 논리임이 틀림없다. 한 사람이 어떤 부분에 돈을 많이 쓰느냐가 그 사람의 관심과 가치척도를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가령 자전거 타이어를 교체하는데만 수백달러를 쓰는 사람도 있고, 명품백을 사는데 수 천달러를 투자하는 사람도 있다. 요즘은 컴퓨터게임이나 화장품 구입에 월수입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실이기도 하다. 반면 어렵게 모은 돈을 불우한 이웃이나 선교지에 아낌없이 보내는 사람들도 많다. 무엇이 중요한가는 그 사람의 몫이고 그들만의 자유인 것이다. 아스팔트에서 태극기를 휘날리며 나라를 걱정하는 어르신도, 한편에선 무능한 독재정권에 맞서겠다고 구호를 외치는 젊은이도,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그들만의 생각과 가치판단이 있을 것이다. 너는 틀렸어가 아닌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래서 '뭣이 중헌디'는 나 한테만 쓰는 말이지 상대방에게 함부로 써서는 안되는 말이 되고 있다. 박성보 기자 샌프란시스코 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