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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아래 #90843의 '십일조를 안 내기로 한 여자'의 글을 읽고 -- 화가남: 누가 십일조 도적하는 사람들인가? #2

페이지 정보

이에수

본문

.
역사적으로 본 십일조

십일조의 이행은 모세의 율법에 의하여 모세 때에서부터 행하여 예수님 때 까지도
이행되어 왔음을 복음서에서 발견되어진다.
‘아브라함’이 아닌 ‘아브람’이 멜기세덱에게 단 한번 십일조를 자의에 의하여 드려졌으나
이것은 어떤 율법에 의하여 드려진 것이 아니며, 구속력이 없는 사건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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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둔 보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보화’‘보물’
원어에서는 ‘보화’나 ‘보물’이나 같은 단어이다.
2344 treasure qhsauro,j thesauros {thay-sow-ros'}

눅 18: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물이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막 10: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물이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눅18: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물이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물이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하나님의 나라’는 (靈)의 세계이니 ‘물질’(物質)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늘에서 보물이 네게 있으리라’는 말씀에서 ‘보물’은 물질이 아니다.
하늘에서 보물이 네게 있으리라’는 이 세상 살면서 ‘보물을 하늘로부터 받는다.’는
말이 아니다.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고 나면 빈 털털이일 뿐이며, 게다가 예수를 따르면 춥고 배고프고 그 이름 때문에 멸시 받는 삶이 있을 뿐이다.
하늘에 있는 ‘그 보물’은 물질이 아니라 물질의 ‘보물’보다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 그 자체’이며 ‘영생’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행2장의 오순절 날이 오기 전이고, 아직은 ‘거듭나지 아니한 부자 청년’에게 하셨고,
“ ---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면 후에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게 되고 하나님 나라에서 ‘그 보물(하나님의 나라 그 자체)을 볼 수 있을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것인가?
(마6:20)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이 ‘하늘에서 보물’이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의 구절들은 좀 더 적극적인 설명이다.

마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동록 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것인가?(아래 눅12:29-34 참고)

마 19: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막 10: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눅 18: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눅12: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 무엇을 마실까 ?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31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먹고, 마시는 것)
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34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하늘에 ‘보물을 저장’하고 싶으면 구제하는 것이다.
하늘에 ‘보물 저장’은 하늘에서 받을 ‘영광이며 기쁨’이다
하늘에 보물을 저장하고 싶으면 구제하는 것이다.
결코 예배당에 헌금하는 것이 ‘하늘에 보물’을 두는 것이 된다고 성경 어디에서도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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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히7:8을 인용하면서 ‘목사들이 십일조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오해된 생각을 한다.
실은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는 그 당시의 ‘멜기세덱’과 같은 모든 ‘거듭난 자들(영의 존재)을 지적한 것이지 오늘 날의 ‘목사들’을 지적한 것이 아니다.
아래의 ‘개역’, ‘공동번역’, ‘현대어번역’, ‘새번역’, ‘KJV’를 참고 했음.

(개역)히7:8 또 여기(모세의 율법시대)죽을 자들(레위인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모세율법 폐한 후)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
(거듭난 자)가 받았느니라

(공동번역) 사제들도 십분의 일을 받고 멜기세덱도 십분의 일을 받았지만 사제들은 언젠가는
죽을 사람들이고 멜기세덱은 성서가 증언하는 바와 같이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현대어번역) 똑같이 10분의 1을 받은 유대인 제사장들은 장차 죽을 인간이었지만
멜기세덱은 영원히 살아 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새번역) 또 여기서는 죽을 사람들이 십일조를 받으나 거기서는 살아 계시다고 증거되는
분이 받는 것이로다.


(KJV) And here men that die receive tithes; but there he receiveth them,
of whom it is witnessed that he live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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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와 레위인들에 관하여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레위인이 ‘하나님의 것’이 된 것은 성막(또는 성전)에서 여호와를 섬기게 하기 위함이고,
십일조는 이들의 생계수입원이다.
만약 성전
(혹은 성막)이 없으면 제사를 드릴 수도 없고, ‘제사법’이나, ‘절기법’도 무용하며,
레위인도 불필요하게 된다.
‘성전’(혹은 성막)이 없으면 제사가 없고,
제사법이 폐기되면 레위인도 필요치 않다는 사실이고,
레위인의 임무가 없으면 “
레위인을 위한 십일조도 필요 없다”는 사실이다.
멜기세덱이 없으면 “받을 대상”이 없으니 십일조를 자원해서 받치고 싶어도 받칠 수가 없다는 이치와 같다.
다른 말로 제사장이 바뀌었으면 제사법도 바뀌는 것은 당연하며

제사직분이 폐지되었으면 제사법도 폐지되게 되며
‘십일조를 받을 레위인’이 없으니 십일조를 받칠 필요도 없다는 논리가 정립된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제사법을 포함한 모든 ‘모세의 율법’이 폐했고,
제사 직분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
(히 7:12)라고 했다.

레위인 아론의 후손 ‘제사 직분’에서 무엇으로 바뀌었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예수그리스도이며,
예수그리스도의 반차를 좇는 여러 제사장들 곧 거듭나고, 거룩함을 지키는 성도들인
‘왕 같은 제사장들
’이다.

히7:11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12 제사 직분이 변역 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 하리니
13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지파에 속한 자(유다지파)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14 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15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16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17 증거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18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지라)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이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율법, 그리스도의 법’이다.

또 레위인의 ‘제사직분이 변역’되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난 모든 자들’에게 ‘제사장직’이 넘겨졌음을 우리가 알고,
또 모세의 ‘제사 율법도 변역’되어 ‘복음으로 제사’드리는 ‘그리스도의 율법
(고전 9:21), ‘그리스도의 법’으로(갈6:2) 변역된 것을 성경이 말하고 있다.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고 십일조를 받는 ‘레위인’이 있다면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히 7:12)라는 성경 말씀을 믿지 않겠다는
결과가 되고, 베냐민 자파의 바울이 행한 ‘복음의 제사장 직무’는 거짓이 된다.

레위지파 아론의 후손이 제사장직을 전수 해 오던 ‘제사직분이 변역’되고
그리고 레위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계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의 줄기가 ‘예수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되었고
‘예수를 믿은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제사장 됨’은
<제사 직분이 변역되고 율법도 변역되어> ‘레위지파’가 아닌 ‘유다지파’(영적으로는 멜기세덱의 줄기)
전수되어 ‘복음의 제사장 직무
(롬 15:16), 곧 ‘영의 직분’, ‘의의 직분’을(고후3:6-11)
새로 받게 된 ‘우리
(거듭난 자들)가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이다.


‘예수를 믿고, 거듭난 모든 자왕 같은 제사장’이다.

롬 15: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 날 이스라엘의 성전은 이미 이천 년 전에 없어 졌고, 법궤도 없으며, 제사도 없다. 물론 레위인들의 할 일도 없어졌다.
오늘 날 이스라엘 나라에서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주고 있는가?
아니다.
성전도 없고, 제사직을 수행하던 아론의 후손도 할 일이 없고, 레위인이 성전에서 하는 일도 없으니 레위인에게 십일조를 줄 필요도 없고, 제단에서 나오는 응식도 없다.
오늘 날 <이스라엘 백성>도 ‘십일조’를 드리거나 ‘십일조’를 받는 <레위인>도 없다.
그런데 교회의 ‘목사’라는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도 아닌 교인들에게 ‘십일조’를 내라고 강요하는 것 자체가 ‘사기꾼의 표적’이다.
그리고 십일조를 거두었으면 ‘거둔 돈’을 이스라엘에 있는 레위인을 찾아가서 ‘하나님의 명하신 십일조를 거두어 왔으니 받으십시오’ 해야 옳다.
그러나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주지 않고 ‘목사’가 가지면 ‘레위인의 것을 도적하는 도적놈’이 된다.
오늘 날 누구든지 하나님의 것, 레위인의 것인 ‘십일조를 가로채는 자가 사기꾼이요, 도적놈’이다.
어쩌다가 한번 십일조를 가로 챈 것이 아니라 평생을 레위인의 것을 가로채서 ‘자기 배만’을 위했으니 ‘전문직 도적’이다.

U.P.C의 어느 목사는 큰 집회 때 다음과 같은 설교를 했다.
“십일조를 받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십일조를 받치지 않았으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 한 것이니 도적놈이 어찌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겠습니까?”

옳다. ‘도적놈’이 감히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이 설교자에 말대로 “도적놈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면 과연 ‘누가 도적놈인가’부터 따져야 한다.

십일조를 내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평신도들이 도적질을 했는가?!

십일조 율법은 이방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주어 진 법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 진 법을 왜 이방인이 지켜야 하는가??
아니면 레위인도 아닌 목사가 레위인이 받아야 할 십일조를 가로 챈 목사가 도적놈인가?!
당연히 레위인의 것(하나님의 것)인 십일조를 가로 챈 목사가 도적이고,
천국 문 앞에서 ‘도적’이란 명찰이 ‘목사’ 이마에 붙은 것을 비로써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성경 어디에도 교회 내에 ‘목사’란 직책은 없다.

-------********* 계속 *********---------

5 ‘옛 계명’과 ‘새 계명’ 3-3

5 ‘옛 계명’과 ‘새 계명’

혹 어떤 사람들은 모세의 “계명은 폐하지 않았다”고 한다.
“계명 중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도 폐했는가?”라고 자신 있게 소리친다.

그러면 계명 중에 하나인 ‘안식일’은 왜 폐했다고 기록되고 있는가??
또 ‘간음’이나 ‘살인’ 문제도 계명으로는 육체적인 접촉이나 실지로 사람을 죽였을 때
‘간음’이나 ‘살인’이었지만, 신약의 복음서에서의 예수님은 ‘마음으로 음욕을 품어도’,
형제를 보고 ‘라가’라고 만 해도 마음에 ‘간음’이나 ‘살인’이 성립됨을 말하고 있다.

구약은 ‘돌 판에 쓰여 지고, 직접적인 마음과 육체에 관한 법’이라면
신약은 ‘마음에 쓰여 지고, 마음과 영에 관한 법’이다.

신약시대의 ‘새로운 피조물들’에게는 ‘모세의 율법’으로 ‘적용 될 수 없고,
적용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이다.
구약의 모세의 ‘계명은 연약하며, 무익함으로 폐했다’는 성경 말씀이 옳을 뿐이다.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으로는 새로운 피조물인 ‘영혼’을 어떻게 할 수 없다.
‘모세의 법’은 모두 폐하고, ‘서로 사랑하라’는
(요13:34) ‘새 계명’으로 대치되고 있다.
마치 에덴동산에서 오직 한 가지 계명만 있었던 것처럼
신약시대에게 주어지는 ‘새 계명’도 하나로 완성된다.
이 ‘새 계명’을 먹으로 쓰거나, 돌비에 쓴 것이 아니고 ‘육의 심비’에 새긴 것이기에
옛 계명’과 ‘새 계명’이 다른 점이다.
같은 내용의 계명이지만 ‘돌비에 쓴 옛 계명’은 폐하고
같은 내용의 계명이지만 재등장 시켜서 ‘영으로 한 것’으로 ‘육의 심비에 한 것’이
곧 ‘새 계명’인 것이다.
만약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이 종이(성경 책)에 써 있거나, 돌비에 써 있는 것을
읽고 보면 ‘옛 계명’이고,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이 ‘영으로 육의 심비에 쓴 것’이면 이는 곧 ‘새 계명’이다.

마치 고속도로에서 ‘속도제한 숫자’가 표지판에만 있어서 눈으로 보기만하면
그 속도제한을 지킬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속도제한 숫자’가 운전자의 마음에 깊이 써져 있다면 ‘속도제한’ 표지판이
눈에 안보여도 교통법규를 분명히 지킬 수 있게 됨과 같다.
이는 ‘모든 행위’는 마음에서부터 결정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고후 3: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일 2: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8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요이 1:5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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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언약의 일군

고후3:6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儀文;문서화 된 글)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9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10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을 인하여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11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롬 15: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벧전2:5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성경에서 물과 성령으로 태어 난 모든 사람이 ‘왕 같은 제사장들’이 되었으며,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져야 한다.
거듭난 존재들’의 ‘모임체’가 ‘교회’이며, ‘성전’이다.
목사만이 제사장이란 생각은 ‘마귀가 준 생각’이다.
‘예배당 건물’이 ‘교회’라고 하거나, ‘성전’이라고 말하는 것도 ‘마귀가 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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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 해 본다.
신약시대(=교회시대)에 와서 아론의 후손의 ‘제사직분이 변하여’ <거듭 난 모든새로운 피조물’이 제사직분>
가졌다면 ‘십일조’는 누가 내고, 누가 받는가? 라는 의문이 생긴다.(모두가 제사장이니 받을 사람은 많은데 낼 사람이 없다.)
이 답은 아래 ‘가이사의 것하나님의 것’에서 설명된다.

‘아론의 후손 제사직분’(육체의 예법. 의문의 직분)은 ‘영의 직분’, ‘의의 직분’으로 변한다.
즉 모세의 율법 ‘제사직분’은 신약 교회시대에서는 ‘복음의 제사장 직무’로 바뀐다.
여기서 꼭 깊이 생각 할 것이 있으니 ‘영의 직분’을 수행하는데는 ‘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돈’으로 해결한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큰 오해다.

예를 든다면 사도 바울이 ‘복음의 제사장 직무’로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을 돈으로
할 수 있는가?
즉 이방인을 ‘회개케 하고, 물 침례, 성령침례’를 받게 하는데 무슨 돈이 필요하겠는가?
또 ‘새로운 피조물’(속사람)이 성장하거나 생활하는데 ‘음식’을 먹거나, 마시거나, 좋은 옷,
좋은 집을 소유해야 하고, 돈을 필요로 하는가?

또 행8:18-20에서
행8:18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19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20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도레아:성령침례)을 돈 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 라고 했다.

안수하여 성령을 받도록 하는 것
(성령침례)은 물 침례와 함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의
한 부분이다. 이 것을 돈으로 할 수 있는가???

거듭난 자
(새로운 피조물. 속사람)들은 십일조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믿음으로 살고,
‘하라, 말라’를 순종하여 거룩함으로 성장해 간다.


목사가 ‘돈, 돈’하는 것은 자기의 유족한 ‘생활비’를 포함한 ‘좋은 예배당 건물’과 ‘유지비’
‘복음을 위해서’라는 명목의 풍요로운 지출들을 위해서 이다.
이 모든 것은 자기 자신의 의사대로 사용하는 것이므로 결국 목사라는 자신이 쓰는 것이다.
단언하거니와 ‘복음의 제사장 직분’은 돈과는 무관하다.
사도 바울은 오늘 날의 목사들처럼 ‘돈, 돈, 돈’하지 않았다.
오늘 날의 목사들은 왜 사도 바울의 본을 받지 않는가?

고전 4: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 받는 자 되라

고전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빌 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 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사도 바울을 본받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기 때문이다.

마 15: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십일조를 요구하는 자들은 ‘자기의 배만 섬기’려고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
(속이다, 사기하다)하는 교회 내의 특정인들이다.

롬 16:18 이 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사기
(미혹)하느니라
(참고: ‘미혹’이라고 번역된 그릭어 원어 exapatao는 ‘deceive: 속이다. 사기하다. 배반하다’는 뜻이다.
‘미혹’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옳은 번역이 아니다.
‘---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사기하느니라’가 바른 번역이다)

교회 시대, 신약 시대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십일조를 내라”고 할 대상도 없고,
십일조를 받을 대상도 없다. 곧 폐지된 법이다.
“그렇다면 교회에 돈을 내지 않으면, 목사의 생활비와 건물유지비, 단체운영 자금을
어떻게 충당하는가?”
라는 질문이 나올 것이다.
답은 간단하다.
“목사 생활비를 내시오”
“예배당 건물 Payment와 유지비용을 좀 내시오”
“단체 운영비도 좀 내시오”
하면 된다.
결코 “하나님의 것을 내시오. 십일조를 내시오”라고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십일조를 받는 사람들은 교인들을 향해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것인 십일조를 냈습니다. 목사인 내게 받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라고 정당성 있게, 자신 있게 외친다. 결국 교인들은 하나님께 받치는 역할만 하면 되는
것이지 목사가 그 돈을 어떻게 쓰느냐를 알 권리를 포기하도록 한다.
목사는 ‘교인들로부터는 아무 것도 받은 것이 없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니’ 교인들에게는 감사 할 것도 없고, 양심에 꺼릴 것도 없단다.

‘레위인의 것인 십일조를 가로 채고도 양심의 가책 받지 않게 하려고 모순 된 줄 알면서도
말 3:8-10을 인용하여 교인들을 겁주고 십일조 이상도 강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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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십일조는 분명한 모세의 율법에 근거하고, 또 레위인들을 위한 것이다.
예수님도 십일조는 율법임을 설명한다.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인)(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십일조)도 행하고 저것
(의, 인, 신)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4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
(십일조)는 걸러내고 약대(의, 인, 신)는 삼키는도다

십일조’가 율법이지만 ‘율법의 더 중한 바’가 ‘
(의)(인)(신)’이란 설명이다.
다시 말하면 ‘
(의)(인)(신)’은 ‘율법의 더 중한 바’이지만
십일조’는 ‘율법 중에서 덜 중한 바’란 뜻이다.
또 예수님은 구약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
‘구약의 율법 시대’에 오셨고, ‘구약의 율법을 다 이루고, 마침이 되기 위하여’ 오셨으며,
십일조가 구약의 율법임을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다.
특히 “십일조도 행하고
(의)(인)(신)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하신 것은
유대인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것이지
한국 사람이나, 미국사람이나, 로마사람인 이방인에게 하신 것이 아니다.

모세의 율법’, ‘구약의 언약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당되는 법이고,
그리스도의 율법’, ‘신약의 언약들’은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해당되는 법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해당되는 ‘모세의 율법’을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적용여
“십일조를 내라”고 하는 것은 ‘사기꾼’이나 ‘강도’가 하는 짓이다.

혹자는 구약성경의 마지막인 말라기서에서
십일조를 드려서 하나님을 시험 해 보라, 부자가 될 터이니---”라고 했다면서
시험 해 보라”가 언제까지를 말하는 것인가?
그 “시험 해 보라”가 구약의 마지막에 기록하고 신약이 왔으니
말라기서와 신약 사이에 500년이란 긴 암흑 기간 동안은 해당이 안 되고(사람의 엉터리 생각)
신약시대인 오늘날까지 효력이 있어서 지금도
십일조를 하나님께 받침으로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미련한 믿음으로 주장한다.

그렇다 해도 말라기의 그 하나님 말씀은
이스라엘 ‘온 나라’를 향하여 하신 말씀이고 약속이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해당 되지 않는 성경 구절이다.


또 말 3:8-10의 말씀을 많이 오해하고 있다.
당시의 유대인들이 ‘십일조’를 내지 않고 ‘통째로 십일조를 떼먹었다’는 뜻이 아니다.
말라기 1장부터 읽어 보면
흠 있는 것, 눈 먼 희생, 저는 것, 병든 것,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십일조’를 받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을 책망하신 것이다.
지금 과연 누가 ‘온전한 일조와 헌물을 드렸다’고 자부 할 수 있는가???
구약시대의 온전한 십일조는 ‘열중에 하나’라는 숫자적 개념이 뚜렷하고, 좋고 나쁜 것을
육안으로 쉽게 구분이 되지만 오늘 날에 목사들은 하나님께 뜨려진다는 것은
모든 것의 십일조’가 아니라 ‘모든 것’ 자체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한다.

그분이 나를 그의 피로 사신 것이니 ‘내 자신이 하나님의 것’이고, ‘내가 받은 것’,
내가 가진 것모두가 ‘하나님의 것’이 분명하다.
다만 그 것을 ‘청지기의 자리’에서 ‘내
(義)’로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義)로’(성경에 기록 된 대로)로 써야 함이 성경적이 아닌가!!!!!
그러나 내가 받은 것은 ‘내 것’이지 ‘준 자의 것’이 아니다.

이제 이 ‘모든 것을 드리는 방법’이 문제다.
어떻게 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온전히 드리는 것’인가????
물론 말3:8-10의 모세의 율법을 인용하여 “내라”고한 목사들에게 받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방법을 예수님이 말씀 하셨고, 신약 교회 서신에 기록되고 있다.
(맨 아랫부분에 씀)

고전 4:7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고전4:1부터 읽으면 ‘받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것은 구제로 받은 돈이었다.구재금)

또 예수 행적의 ‘그림자’가 되는 모든 모세의 율법은 아래 성구에 기록 된 ‘때까지’ 유효하며,
그 후로는 <율법 아래 나신 예수님>,
실체이신 예수님’이 <율법의 요구>를 이루시고, 마침이 되신다.

갈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로고스의)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
5 율법 아래 있는 자들
(유대인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호적에 등재된 법적 효력)
얻게 하려 하심이라

마11:12 침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13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예언한 것요한까지니
1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者)니라

눅16:16 율법선지자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17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 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

롬10: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
(율법의 끝)이 되시니라

예수님은 실체의 ‘그림자’인 ‘율법과 선지자’ 예언한 것은요한의 때까지’ 지속되었음을
말씀하셨으며, ‘그림자’의 ‘실체’가 되시는 예수님이 요한으로부터 바톤을 넘겨받아
‘구약의 율법인 제사법과 절기법에 의하여’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부활하심’으로 <율법을 이루시고, 모든 믿는 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
(롬10:4)>이 되셨다.
이것이 복음이며(고전15:1-4), 예수님께서 ‘제사법과 절기법의 요구’ 대로 (복음을)이루심을
알고, 믿고, 순종하는 것이 ‘복음의 순종’이다.

다시 정리하면
예수님은 율법의 일점일획도 떨어짐이 없이, 폐하지 않고 ‘다 이루시고’, ‘율법의 마침’이 되고,
그리고 새로운 시대(신약)를 열면서 구약의 율법을 모두 폐하셨고,
또한 ‘그리스도의 율법’으로 대치 하셨음을 성경이 설명하고 있다.

----------****************----------

오늘 날 많은 곳에서 건물을 지어 놓고 성전이라고 하면서 “이 성전이 교회”라고 주장하며
가르친다.
건물이 교회가 아니고 ‘거듭난 자들의 모임’이 ‘교회’이다.
그리고 교회의 목사는 <율법의 레위인 제사장>과 같아서 ‘십일조’를 받아야 한다고
순진한 사람들(성경을 바로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가르친다.
이런 가르침은 성경적 근거가 100% 없는 거짓말이다.
십일조가 아브라함 때부터 있어서(이것은 명령이 아니었음) 율법이 있기 이전에 존재하였으므로
십일조를 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모세의 율법이 있기 전부터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인 ‘할례의 명령’도 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오늘 날 ‘포경수술’하는 사람은 있어도 ‘할례’받는 사람이 없듯이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도둑놈’이라고 협박하면서 강요하는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
(‘십일조’를 내지 않는 사람이 ‘도둑놈’이 아니라 ‘십일조’를 받는 자가 ‘도둑놈”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십일조를 내야하고, 할례도 받아야 한다면 다른 모든 율법도 다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또 율법이 있기도 전에,
할례가 있기도 전에,(이것은 명령임)
멜기세덱에게 드린 십분 일이 있기도 전에,(명령이 아님)
“나의 안식일”이라고 하신 ‘제칠 안식일’도 창조 때부터 존재하였으니
(이것도 명령이 아닐뿐더러 ‘안식일’이 아님)안식일도 지켜야 마땅하다는 모순된 결론이 나온다.

십일조를 내야 한다는 자들이여,
할례도 행하고, 안식일도 지켜야 하고, 소 잡고, 양 잡아 제사도 드리는 것이 당연하니라!!!

그리고 ‘안식일’과 ‘십분 일’이 율법이 있기 전부터 있었다는 주장은 거짓이며
명령도 아니었고, ‘할례’만 명령이었다는 걸 기억하라.
그러나 이 세 가지
(안식일, 십일조, 할례)는 모두 폐하여 졌으며
7일 중에 하루 ‘안식일’은 영혼의 영원한 ‘안식’으로---
제사직분의 ‘십일조’는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가 되고---
육체의 할례’는 ‘그리스도의 할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로 변역되었다.

-------********* 계속 *********---------


6/7 십일조 도적하는 사람들 6 3-3


6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

※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말1: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
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
-------------------
말 3: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마22:17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한대
18 예수께서 저희의 악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
19 셋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 왔거늘
20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 ?
21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막12:13-17, 눅20:20-25에도 동일 내용)

막 12:17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저희가 예수께 대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더라

눅 20:25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혹자는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으니 지금도 십일조는 계속 받쳐 져야 한다고 목사의 말을 성경적 확인도 없이 일방적으로 믿고(맹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실 당시에는 율법이 살아있는 구약시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이 되는 십일조는 당연히 레위인들에게 받쳐져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율법을 이루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부활하심으로 모든 모세의 율법은 폐하여 졌다.

‘레위인’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레위인’을 위한 “십일조”가 당연히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나 교회시대인 신약시대에는 십분의 일만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십분의 십’ 모두가 하나님의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의 아들 12 후손 중에 레위의 후손을 하나님께 돌리고(바치고) 이 레위인들을 “내 것”이라고 선포하시고 이들을 위해 “십분의 일”을 나머지 각 지파들로부터 거두어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주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계수함을 받을 때 레위인들을 제외하고 12지파의 수가 603550명이었다.(민1:46) 계수함을 받지 않은 레위인들의 수가 아마도 6만명 정도가 아니었겠나 추측된다. 그래서 각 지파마다 수입의 십분의 일씩 거두면 레위인들의 생활이 보장되게 되도록 하는 system으로 보여 짐.)

그러나 교회에서는 12 중에 하나이거나 10 중에 하나를 택하여 제사장 직을 하게 한 것이 아니라 거듭난 자 모두를 제사장으로 삼으신 것을 성경에서 발견하게 된다.
거듭난 자 ‘몽땅 다’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릴 때”에 예수님 자신이 “제사장”이 되시어 드림과 같이
예수를 믿은 사람이 “자기 자신이 제물이 되고, 자기 자신이 제사장의 일을 하여”
제단에서 죽고(죄의 종 옛 사람 죽음, 회개),
물두멍에서 씻고(죽은 옛 사람 장사, 물침례, 죄 사함),
성소에 들어가 거룩함에 잠기어(부활, 성령침례, 새로운 피조물 탄생)
제사장이 하는 과정을 예수님처럼 행하여 제사장이 됨과 같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 난 자>는 제사장 됨이 분명하다. 영의 존재)
교회에서는 십일조를 낼 자도 없고, 받을 자도 없다.
교인 모두가 제사장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죄인들을 피로 값 주고 사서 모두를 “교회”로 삼으신 것이기 때문이다.

행 20: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

반 세겔color=blue>

마17: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가로되 너의 선생이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
25 가로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가라사대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뇨 ?
세상 임금들이 뉘게 관세와 정세를 받느냐 ?
자기 아들에게냐 ? 타인에게냐 ?
26 베드로가 가로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하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아들들(오늘 날에 거듭난 존재들)은 성전 세(반세겔)를 낼 의무가 없다.(세를 면하리라)
그러나 종은 세를 내야 한다. “나는 하나님의 종이다”라고 외치는 자들이여, “성전 세를 내라. 종들이여, 하나님의 아들들을 위해 예배당 건물을 위해 돈을 내라. 어찌하여 종들이 내야할 돈을 주인의 아들들보고 돈을 내라하는가??”
반세겔(성전 유지비) 즉 오늘 날의 ‘예배당 건물 유지비’는 성경적으로 모순이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교회는 있어도 “독립된 예배당”은 없었으며 예배로 모이던 장소는 “누구, 누구 집에 있는 교회”로 기록 되어있음을 볼 때 항상 어느 성도의 집에서 모임을 가진 것을 알 수 있다.

고전 16:19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골 4:1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몬 1:2 및 자매 압비아와 및 우리와 함께 군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하노니

즉 오순절 날 교회가 출발되어 진 이십여 년 후이지만 모임의 건물이 없었다는 것은 ‘건물의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거듭난 존재” 자체는 “건물”을 요하지도 않고, 또 모임의 숫자가 <개인 집에서 모일 수 있는 수>에 제한된 것이라 믿어진다.
그 이유는 ‘성도들 간에 모임의 수’가 <실질적인 교제>를 할 수 있고, 양치는 목자가 양 하나, 하나를 관심 있게 돌 볼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는 현실성에 있다.
오늘 날 소학교 한반 교실의 학생수가 선진국에서는 25-30명을 기준하고 있듯이 한반에 6-70명이라면 한 선생이 어찌 다 학생들을 돌 볼 수 있겠는가?
오늘 날 한 교회의 교인 수가 수만 명, 수천 명, 수백 명은 결코 성경적이 아니다.
혹자는 “그러면 교인수가 한집에서 모일 수 없을 만큼 많아지면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한다. 답은 간단하다.
갈라서 따로 모이면 된다. ‘적은 수의 여러 개’의 교회가 되는 것이다.
한 목회자에게 많은 사람의 수로 집중되는 것은 “사람을 따르는 현상”이지 결코 “예수님을 따르는 현상”이라고 할 수 없다.
개인 집에서 모이면 건물 구입을 위해 ‘건축헌금’ 강요할 필요도 없고, 목회자는 바울처럼 그의 본을 받아 스스로 일하여 살면 되고, 목회자 생활비 지급도 걱정 할 필요 없다. 목회자에게 생활비도 안 주니까 먹고 살기 위해 직업을 목적으로 하는 ‘거짓 선지자’가 생길 확률도 거의 없다.
목회자라는 사람 거의가 “보다 큰 건물, 보다 좋은 건물, 보다 많은 교인 수에 목회 목적”을 두고 있다. 이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벧전 5: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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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집
(성전과 예배당)

또 UPC는 “예배당”을 “하나님의 집”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성경 구절 자체는 “예배당”을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지 않고 “교회”를 “하나님의집”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고전 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건물”이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지 않고
“너희”가 “하나님의 집”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히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어떤 건물을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가 아니라
거듭난 자들 곧 교회를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신다.”가 옳지 않은가!!

벧전 4:17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하나님이 심판 할 실 때’ “어떤 건물”에서 심판하시는가????? 당연히 아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집” 곧 “교회”를 심판하신다. 즉 “거듭 난 자들”을 ‘거룩함으로 살았는가?’로 심판하실 것이다.

딤전 3: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이 집” 곧 거듭 난 자들. 다시 말하면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도의 육체”가 “하나님의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성전과 예배당”을 혼동해서는 않된다.
만약 “하나님이 거하시지 않는 육체”는 “하나님의 집”이 아니고 “빈 집”이던지 아니면 “마귀가 거하는 집” 곧 “사단의 집”, 혹은 “귀신의 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목회자의 삯

딤전0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딤전05:18 성경에
추천 0

작성일2024-03-28 18:26

이에수님의 댓글

이에수
딤전0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딤전05:18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신25:04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방랑객님의 댓글

방랑객
말은 좋은데... 그러면 조 유산이 하고 양 향빈이는 뭘 먹고 사나? 그 많은 재산은 어디서 나왔나 ?

이에수님의 댓글

이에수
미친넘, =개잔나비, =산화비, =윤정진, =WTiger
이넘은 늙거 뒈지지도 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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