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영화 "박열"을 보고난 유샤인의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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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 뜨거운 조선의 청춘 박열과 만나다! (2017.06.28)어쩌다 오늘 "박열"이라는 한국 영화 (이준익 감독의 작품)를 보게 되었다.
https://www.viki.com/movies/35596c-anarchist-from-colony
이 영화는 조선인이 일본 식민지 총치하에서 일본인들에게서 천시당하며 살던 때에 실제로 일어 났던 일을 영화한 실화영화다.경상도에서 태어나 일본에 유학하던 박열이란 젊은이는 시를 쓸 정도의 지식인으로 그 당시 일본 지식인들에게 어필(appeal)하고 있던 무정부주의 사상(Anarchist) 에 접하여 일본인들에게 천대받던 조선인으로서의 반항정신을 살려 갔었다.
그는 일본인을 포함한 저항운동 단체, 불령사를 오뎅집을 근거지로 설립하여 저항운동의 일환으로 황태자을 폭격하기 위해서 폭탄을 구입하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 때에 불행하게도 1923년 9월에 실제로 일어난 지진으로 관동일대가 거의 다 지진과 지진에 의하여 불에 파괴된다.
그 당시에 재난으로 불만이 많은 일본인들의 시야를 집권 내각에서 다른 곳으로 전가시키려는 의도를 간파한 퇴직당한 미즈노대신은 조선인들 때문에 자기가 퇴직당했다고 생각하며 조선인들을 증오하던 차에 책임을 조선인들의 난동으로 전가하기 위해서 거짓 유언비어를 퍼트려 그 당시에 일본에 거주하던 조선인들 거의 6000여명이 일본 조폭들에 살해당하게 한다. 부패하고 타락한 정치인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다 마찬가지로 거짓뉴스를 조작하여 무지한 시민들을 기만하고 있다.
그 당시의 일본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그런 뉴스가 국제사회에 알려지는 경우에 대비하여 조선인 살해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조선인 중에 두목되는 자들를 색촐하여 대역죄로 심판하기로 미즈노는 계획했다. 그런 계책에 박열 일당이 잡혀 들어 가는데 박열은 동지들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이 독자적으로 일을 꾸몄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박열이 쓴 개새끼라는 시로 인해서 박열을 알게 되고 사상이 같다보니 서로 사랑하게 까지 된 여동지로서 동거생활을 제안한 후 함께 같이 동거하던 일본여인, 가네코 후미코는 그와 운명을 같이 하고자 하여 자진하여 박열과 함께 공모했다고 주장한다.그 당시 상황을 잘 파악한 박열은 빠져나갈 수 없은 상태를 잘 인식하여 앞으로 전개될 대역죄 심판을 그는 그의 무대로 써서 조선인들의 억울한 식민지 통치를 세계에 알리고 또한 인간이 천황노릇하는 비정상적인 정치 체제 상황를 무정부주의자로 천하에 알리려고 젊은 검찰에게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 주겠다며 타협과 거래로 자기 주장을 내세웠다.
그 당시의 양심적인 일본인들의 지지도 있고 해서 그는 세기적인 재판의 주인공이 되어 그 당시 세계적인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천황의 독재정치의 부당성과 조선 식민지 통치의 부당성을 세계에 알리려다가 재판은 비공개로 진행되고 결국엔 그와 그의 연인 가네코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적대적이던 검찰관과 감옥소장의 동정을 받아 내어 두 연인은 아래 보이는 사진을 찍어 언론에 내 보낼 수 있었고 한때 뉴스거리가 되었기에 그런 뉴스 재료가 많다보니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거의 90% 영화는 실화에 가깝게 만들 수 있었다고 진술한다.
자신을 희생하여 동지들을 살리려고 결정한 박열의 결심은 숭고하고 본받을 만하다. 그 당시 언론을 마무하려고 사형에서 종신 징역으로 감형받는 2연인은 각자 다른 지역에서 복역하다가 가네고는 박열의 애기를 가졌을 것이라고 주측한 감옥소 측에서 자살로 만들어 처단한 것으로 밝혀 졌고 박열은 22년 2개월을 살고 일본이 미국에 항복한 그해 10월에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출사하게 되었다.
어쩌다 가네고 후미코는 조선인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나를 그녀가 쓴 책을 통해서 잘 알게 되었다는 데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에게서 버림받은 생활을 조선에 가서 할머니 집에서 식모살이로 살던 중 조선인들의 동정을 많이 받고 조선인들에 호감을 갖게 되었었다고 한다. 그 뿐 아니라 그녀는 3.1절 운동을 직접 목격하게 되었고 조선인들의 울분을 실제로 보고 체험하다보니 일본 천황제도를 전복하고 싶은 미움에 찬 사상을 지니게 되고 박열과 동지로 동거하기를 작정했다고 영화는 보여 준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이 세상에서 여러면으로 남들에게 당하고 고생하면서 앙심을 품게된다. 그런 앙심에서 그들을 억누르는 체재를 전복시키려고 온갖 운동을 벌리고 있으니 인간역사에서는 이 영화에 보여주는 악랄한 미즈노와 같은 정치인들이 언제나 있을 것이고 그런 정치인에 희생되어 투쟁하는 사람들 또한 언제나 존재할 것이 이 세상의 정해진 이치가 아닐가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다.
지금의 남한도 그때나 별로 다를 것이 없으니 예수의 복음으로 해방되어 진정한 자유를 맛본 유샤인은 인간사의 해답은 성경의 복음 뿐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하는 영화였다.
박열에 관해 더 알고 싶으면 아래 링크들을 열어 보시라.
박열은 마침대 남한에서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아 정부의 훈장을 받았다고 한다.
https://www.viki.com/movies/35596c-anarchist-from-colony <=여기를 클릭하면 어쩌면 무료로 이 영화 볼수 있을 것이다.
http://v.media.daum.net/v/20181113101500367?f=o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ungyeongsi&logNo=221411195420
https://www.youtube.com/watch?v=flnKbr9LiDc Click the link if auto video feature does not work on your browser.
실제 사진과 영화 장면 사진이다.
박열은 그의 손을 가네코의 왼쪽 젓가슴위에 얹고 사진을 찍기로 했다.
작성일2018-12-1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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