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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4 설레임
공항,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 데려다줄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설레인다. 아직 한참 이른 새벽이지만, 많은 사람과 그들의 짐가방과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이름의 도착지와 얼른 떠나고 싶어 서두르는 마음들이, 공중으로 바닥으로 엉켜져서는 들뜬다. 나도 그 속에서 같이 날아다닌다, 실타래 같은 생각들과 함께. 왜 익숙하고 친근한 것은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 것일까? 영원히 곁에 있으리라는 만만한 믿음 때문이지만, 아무런 탈 없이 평화롭고 익숙한 일상들이 결코 감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다르게도 해보고 싶고, 왠지 저 먼 곳 무지개 너머에 숨겨져 있는 보석 상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들이, 어서어서 떠나보라고 충동질한다. 전혀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가지는, 이상스러운 반항과 이유 없는 자신감과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설레임이, 잊히지 않는 중독된 맛처럼 계속해서 잡아당기는 것이다. 어디를 가도, 장소와 사람들의 제대로 된 이름도 외우지 못하고서 돌아오지만, 지나가듯 누군가가 했든 한마디와, 웃으면서 스쳤든 감촉과, 낯선 곳의 바람이 내는 긴소리와, 차 안에서 흥얼거렸든 유행가 가사는 아직도 떠오른다. 그런 작은 것들의 두런거리는 속삭임과, 함께 지냈던 사람들의 내음과, 떠나오는 날에 떠오르든 유난히 붉었든 태양이, 더 오래오래 설레게 한다. 그리고는 다시 낯선 곳에서 살던 곳으로 돌아오기 위해, 불편한 공항 의자에 앉은 채 졸면서 시계를 보고 있을 것이다. 여전히 되풀이되는 - 그래, 그랬어- 라는 후회와 미안한 마음으로, 비어있던 몫을 메꾸려 더 애쓸 거라는 거 안다. 그렇지만 편안하고 익숙하고 더없이 게으른 날의 일상 속에서 살다, 문득 가슴속 한 곳이 다시 답답해질 땐, 어떻게 무슨 변명을 하며 이 설레임을 찾아 떠나야 할까,,
2017-10-04 바이러스와 백신
미국에 도착 직후 이민 보따리를 채 풀기도 전에 먼저 오신 오빠는 내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여긴 눈 뜨고 코 베어가는 곳이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하느니라" 이해할 수 없는 오라버니의 조언에 나는 피식 웃으며 속으로 대답했다. '내가 오빠 닮은 줄 아시나 봐. 걱정 마세요.' 그러나 내심 고단했을 오빠의 이민생활이 느껴져 맘이 짠했다. 세월이 꽤 흘렀다. 당시 중학생이던 두 아이가 대학원을 졸업해 자기 앞가림을 하기에 이르렀다. 나의 책임을 다했다 해도 어쩐 일인지 미국생활은 눈뜨고 일어나면 밤 늦게까지 그저 일에 파묻혀 사는 일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미련할 만큼 일에 열중하며 산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 하루를 선물로 받아 건강하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나름 행복하기만 하다. 그런데 어느 날 뜻하지 않은 고민이 생겼다. 평소 선한 일에 언제나 솔선수범이던 한 지인이 내게 매우 곤란한 부탁을 했다. 정확히 닷새만 필요하니 꼭 현금만을 빌려달라고 간곡히 사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비축해 놓은 비자금이 별로 없다. 기껏해야 응급상황 발생시 한 달 정도 살수 있는 비용뿐이다. 내 형편을 소상히 밝혀 거절을 표하자 그 지인은 아주 급한 일이니 다른 곳에서라도 융통하여 빌려 달라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끈질기게 채근을 했다. 참으로 괴로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하늘나라는 항상 급한 사람을 먼저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에 그의 위급함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어서였다. 이 지역의 유명인이라 자처하는 그는 체면상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이 창피했는지 오죽하면 가난한 싱글맘에게 손을 내밀었겠느냐며 사정 또 사정을 했다. 그리하여 나는 결국 최선을 다하여 쌈짓돈은 물론 그가 원하는 만큼의 현금을 융통하여 빌려 드렸다. 그런데 이후 그 지인은 곧바로 일방적으로 내게 연락을 끊어버렸다.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바뀐 지금까지도 빌려간 돈은 한 푼도 돌려 주질 않고 있다. 다만 얼마씩이라도 갚아 달라고 통사정을 해 보았지만 오리무중이다. 아니 오히려 그까짓 거 몇 푼 안되는 것 가지고 사람을 들들 볶는다고 역정을 내었다. 돈을 빌려가기 전에 그는 틈만 나면 자신이 부자이며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사람이라고 누구에게나 자랑하고 다녔다. 남들이 부러워 할 만한 아방궁 같은 멋진 주택을 소유하고 있고 매달 정기적으로 월세를 받고 있는 본인 소유의 건물도 있으며 매상 좋은 비즈니스도 갖고 있음은 그를 아는 이웃들도 인정하고 있다. 게다가 넘치는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고 있다는 평판 좋은 그는 때때로 곤고한 영혼들에게 명강의까지 하고 다니신다. 나는 많은 날들을 원통함과 절통함, 자괴감으로 지냈다. 당시 지극히 상식적인 차용증 한 장 받아 두지 않았던 나 자신에 대한 미움으로 밤을 지새우던 어느 날 오랜만에 컴퓨터 앞에 앉게 되었다. 메일을 열자 웬일인지 스팸 메일이 여러 개나 들어 와 있음에 짜증이 났다. 가차없이 쓰레기통에 넣어 삭제했는데 또 다른 불필요한 것들이 화면에 뜬다. 신경질적으로 마우스를 이리저리 클릭하다가 바이러스가 침입했다는 경고가 울린다. 꾹 참고 알약으로 말끔히 청소하고 다시는 재생할 수 없도록 잠금 장치를 설정한 뒤 안전장치를 걸어 두었다. 그렇게 한참을 컴퓨터와 씨름하던 중 한 가지 생각이 강렬하게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지금까지 전혀 관리하지 않고 있었던 나의 내면의 세계였다. 살아오는 동안 삭제하지 않은 채 오직 쌓아 두기만 했던 더러운 찌꺼기들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었음이 줄줄이 떠올랐다. 그 지인은 지혜롭지 못해서 눈에 뻔히 드러나는 돈으로 나에게 사기를 쳤는지 모르지만 나야말로 용의주도하게 티 나지 않는 속임수를 삶에 적용해 전혀 들키지 않고 잘 살고 있음이 깨달아져 한없이 울었다. 늘 존경하고 있는 어떤 분의 말씀이 떠오른다. 똑같은 이슬이지만 그것을 뱀이 먹으면 독이 되고 벌이 먹으면 꿀을 만들어 낸다고 했다. 아, 얼마나 다행인가. 아직 내 몸의 구석으로까지 퍼지지 않은 독을 제거하기 위해 나는 재빨리 미움과 원망, 분노의 바이러스들을 제거하는 일들로 바빠진다. 그리고 마침내 최고의 해독제인 '용서'라는 백신으로 모든 것을 아름답게 정리했다. 이 모든 일에 고맙고 감사하다. 비록 비싼 인생수업료를 치르긴 했지만 내 안에 바이러스의 침범을 막는 잠금 장치를 굳건히 걸어 둔 것과 어떤 상황에 상관없이 마음의 방향이 여전히 하늘을 향해 열려 있음에 기쁘기까지 하다. 이제서야 비로소 행복한 꿀벌이 된 나는 우리 오라버님의 당부대로 눈을 크게 뜨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 부지런히 나를 살핀다. 혹시 내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누군가에게 눈물로 호소할 일을 행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고 말이다.
2017-09-06 파워 게임
근간에 소중한 친구와 작별을 고했다. 그녀로부터 아프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지 채 석 달도 채우지 못해서다. 나보다 열 살이나 아래인 그녀가 먼저 지구를 떠난 뒤에 닥치는 대로 영화를 보러 다녔다. 여전히 이곳을 향해 웃고 있는 카톡 속의 행복한 얼굴이 함께 했던 추억들을 상기시키는 것이 무척 힘들다. 그녀가 남기고 간 많은 분량의 여행칼럼은 대부분 나와 동반했던 여행지였기에 더욱 그런가 보다. 호프 밸리에서의 은사시나무와 송어낚시, 요세미티 하프돔에서의 저녁노을, 나파의 한적한 시골 마을의 포도원과 하프문베이 바다의 장엄한 파도, 그리고 따스한 봄볕 아래서 손잡고 거닐었던 보랏빛 들꽃길이 마냥 그립다. 그녀와의 갑작스런 이별 후 나는 계속 의아했다. 하필이면 왜 내게 이런 일이 허락됐느냐고 울부짖으며 분노할 만도 한데 그녀는 단 한마디의 원망도 없이 젊은 나이에 이 땅을 훌훌 털고 떠났다. 과연 긍정적인 그 원천의 힘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궁금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허함과 우울한 마음으로 무작정 영화를 보러 다닌 것이 열 편이 넘었다. 그중에 한국 영화는 네 편을 감상했고 어제는 늦은 시간에 '택시운전사'를 관람하게 되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를 실화한 영화라는 점에서 초반부터 매우 긴장되었다. 영화가 시작되자 스크린에 과격하게 퍼부어지고 있는 군부대들의 민간인 사격장면에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 그 어떤 명령 수행이 떨어지더라도 어찌 한 가족 한 형제에게 그런 만행을 저지를 수 있는지 너무 끔찍하여 울분을 금할 수 없었다. 사건 당시 나는 서울에 살고 있었기에 이 비극적인 사실을 잘 알지 못했다. 미디어를 장악한 정부의 소행으로 올바른 뉴스를 접할 수 없었던 것이 원인이었다 해도 역사의 진보를 위해 희생하신 임들께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에 내내 명복을 빌었다. 극장 안 곳곳에서도 관람객들의 분노와 통탄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갑자기 상영 도중 2004년에 개봉한 영화 '실미도'가 떠올랐다. 1970년대 북한 침투 작전 특수 훈련 중 정부와 군, 경찰 간의 교전으로 비운에 갔던 31명의 영혼들에게도 같은 마음으로 평안을 빌었다. 사건 이후 국방부의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해 늦게나마 조사가 시작됐던 것으로 기억되는 '실미도'가 지금의 '택시 운전사'와 오버랩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생각하다가 문득 힘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내가 믿기로 인생은 사는 날 동안 연속적인 파워게임의 반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파워게임의 승패는 마음가짐의 싸움으로부터 시작되고 정의와 불의, 선함과 악함의 대결 중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는 하늘과 땅으로 나뉘는 것처럼 중대한 일인 것이다. 나는영화 '택시 운전사' 를 통해 처음에는 작은 힘으로 시작된 공의가 다이너마이트 같은 폭발적인 파워가 되어 결국 죄와 악과 불의를 몰아내고 있음을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았다. 겉으로는 불법의 사악한 권력이 세상을 삼킬 듯 거대한 힘으로 보이지만 언젠가는 내공의 힘을 가진 의로움이 반드시 승리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영화에서처럼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감춘다고 감춰진 일이 어디 있었던가! 어차피 살아가는 일 자체가 파워 게임이라면 나는 오직 선한 싸움을 위해 내공을 다지리라 마음먹는다. 하늘로 떠난 내 친구는 심령으로 자기를 이기고 환경을 이기고 세상을 이겨낸 영력을 가진 실력자였다. 평소 그녀가 즐겨 부르던 노랫말은 내면에 잠재해 있던 거대한 파워였음을 나는 지금에서야 알았다.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근심 하나 없네. 사랑의 주, 내 갈길을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2017-09-06 약속
캔버스 앞에 앉았다. 아무 것도 없는 텅빈 캔버스 앞에서 무엇으로 그릴까 하는 생각에 잠시 머뭇거린다. 화려한 색감으로, 저 밑바닥 아래 감춰있는 속마음을 드러내고 표현하고 즐기는 난, 가끔은 유화로 또 아크릴화로 많은 색들을 꺼집어낸다. 기름으로 묽게하여 두껍고 깊은 질감이지만 잘마르지 않아 오랜 시간의 덧칠이 필요한 유화와, 물로 섞어서 간편하게 금방 마르면서 이미 만들어져 있는 많은색을 원하는대로 빨리 편하게 쓸수있는 아크릴화이다. 그렇지만 요즈음은 무엇이든 그자리에서 바로 알아야하고, 또 빨리 보고싶어 하는 마음으로 모든 일에 서두른다. 느긋하게 그 과정 안에서 가지는 즐거움과 깊은 맛을 잊어버린 것이다. "인간시장"의 작가 김홍신이 최인호 작가와의 생전의 약속으로 온 손가락 마디마디의 고통을 감수하며 여전히 펜으로 소설을 집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소설의 긴 집필 과정을 컴퓨터로 쓰면 편하고 쉬울 것인데도 굳이 약속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성공했고 많은 연륜을 쌓은 작가이면, 누가 그 고집을 일부러 묻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스스로 지켜야할 것은 힘들어도 품고, 또 포기할 것은 버리고서 가야한다는 신념때문에 여전히 펜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이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지켜가는 사람이 많으니 세상은 또 아름다운 것일 거다. 모든 일들이, 쉽게 온 것은 쉽게 간다는 거 잘 안다. 오래전 어렵게 그림을 다시 시작하며 했던 처음 나와의 약속 그대로 "지킬 것은 지켜가며, 그림도 그리고 또 세상도 살아야지요" 라고 중얼거리면서, 뒷켠에 묵혀 두었던 유화물감을 한가득 꺼내어 오래된 커다란 파렛트위에 아주 듬직하니 마음껏 짜놓았다.
2017-08-02 새 둥지를 보며
아침 일찍 새소리에 잠이 깨었다. 오랜만에 눈부신 동쪽 햇살 보며 두 눈 찡그린 체 뒷마당으로 나선다. 늦은 밤에 잠드는 버릇 때문에 밝아오는 여명을 보지 못하지만, 가끔 시끄러운 새들의 지저귐 덕분에 억지 새벽잠에서 깬다. 부스스한 체 엉망으로 엉킨 머리가 창에 가득하다. 진한 커피 한잔을 들고 문을 열다 언뜻 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선 웃음이 터진다. 나의 무심한 큰 웃음소리에 놀란 새들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급히 날아오르고, 그 소리에 놀란 나는 뜨거운 커피를 쏟을 뻔했다. 이사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아 마당 뒤편 지붕 등에 불이 들어오지 않기에 사다리를 걸고서 올라가 보니, 새가 알을 품고 있었다. 한동안 불을 켜지도 않았었고 또 높은 곳에 있는 탓에 그리 편하게 알을 품고 있었던 거 같다. 어릴 적부터 새들이 무서웠던 나는, 언제 새가 날아가고 난 후에 등을 갈아야지 하면서 몇 년이 지났고, 새들은 둥지 주인을 바꾸어 가며 여전히 알을 품고 새끼 새들을 키워가고, 난 아직도 그 등의 전구를 바꾸지 못하고 있다. 무슨 종류의 새들인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태어난 여기가 고향이라 여기는지 조금씩 숫자를 늘려가면서, 어느 날은 수없이 많은 새가 작은 지붕 위에도 담장 꼭대기에도 내가 가끔 노을을 보는 의자 위에도 앉아, 나를 바라다보고 있다. 난 새들이 나의 자리를 침범하였다 생각하며 투덜거렸는데, 갑자기 어쩌면 나도 잠깐 이 세상의 한 자리를 빌려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라 오만 부리지만, 사실은 뒷마당의 많은 새처럼 그냥 스스로가 그렇게 여기며 사는 것이지 진정 나의 것이 아닌 것이다. 산다는 것도, 바람 불면 잠시 숨어있다 다시 날씨 좋은 날 더없이 지금을 만끽하며 뒷마당에 살고있는 새들처럼, 작은 하나의 생명체 그것뿐일 거다.
2017-08-02 별이 빛나는 밤에
꽤 오랫동안 발병을 앓았다. 우리의 민요 중에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다'고 노래하던데 어찌 된 일로 임도 없는 나에게 발병이 생겨났는지 조금은 억울한 생각이 든다. 의학 용어로는 'Heel spur'라고 하는데 멀쩡하던 발뒤꿈치에 갑자기 불필요한 뼈가 만들어져 발바닥의 인대와 신경을 누르는 현상으로 가해지는 통증은 그야말로 몸서리치게 아팠다. 평소 틈만 나면 발발거리며 잘 돌아다니던 내가 풀이 죽어 방 안에만 박혀 있는 것을 안쓰러워하던 경희 언니가 느닷없이 명령조의 전화를 했다. "오늘 정각 12시에 너희 집 앞에 도착할 테니 수영복 한 벌하고 노트북만 챙겨 들고 나와" 영문도 모른 채 절룩거리며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낯 설은 벤이 내 앞에 섰다. 뜻밖에도 자동차 안에는 경희 언니와 함께 초면인 세 명의 여인들이 함께 탑승하고 있었고 큰 아이스박스와 더불어 침낭. 먹거리 가방 등이 가득 실려 있었다. 한눈에 봐도 먼 거리 여행임을 직감했다. 어리둥절해 하는 나를 향해 언니가 말한다. " 발바닥에 두 번씩이나 주사를 맞았는데도 낫지 않았다니 무척 걱정된다. 다른 치료법으로 한 번 고쳐보자. 내가 알아봤는데 그곳이 참 좋다더라. 네가 안 간다고 할까 봐서 여기 네 또래 친구들까지 알선해서 모셔왔다." 매사에 마음 씀씀이가 깊은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처럼 챙겨주니 눈물이 핑 돌았다. " 반갑습니다. 난 미세스 박이고요. 저는 김 수자예요. 재키 엄마입니다" 서로의 인사가 끝난 후 멀미를 배려해 거듭 미안해하는 나를 운전석 옆에 앉혀주었다. 서먹서먹한 것도 잠시 우린 금방 친해져서 가는 동안 내내 수다가 끊이질 않았다. 드디어 남쪽으로 5시간을 운전해 도착한 지점은 깨끗한 시골 마을에 자리한 작은 Lake. I유황 온천장이었다. 놀라웠다. 땅에서 올라오는 유황의 냄새를 즐기며 많은 양들이 들판을 유유히 거닐고 있는 풍경은 특이하고 경이로웠다. 첫날 저녁은 야외에서 불을 지펴 고기를 굽고 된장찌개와 상추, 풋고추로 시골밥상을 차렸다. 둘이 먹다 한 사람이 죽어도 모를 만큼 정말 짱 맛있었다. 예로부터 정이 많은 우리 민족은 역시 이곳에서도 들어나 타지에서 온 처음 만난 사람과도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밤 늦도록 담소를 하니 천국이 따로 없는 듯했다. 더구나 미국땅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온천장에 우리나라 사람끼리 한데 어울려 회포를 풀 수 있으니 얼마나 가슴 뿌듯하고 즐거운지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얼떨결에 달려 나오는 바람에 나는 비키니 수영복의 상의만 달랑 싸가지고 왔던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상심하는 나를 위로하느라 우리 여인네들은 이참에 모두 이브가 되자고 의견을 모았다. 드디어 다른 방문객들이 깊이 잠이 들기를 기다려 살금살금 온천물로 뛰어들었다. 가로등도 없는 곳에 작은 전등마저 모두 꺼버리니 사방은 정말 깜깜했다. 그러자 오직 머리 위로 쏟아지는 수많은 별빛만이 더욱 찬란해져 저절로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그 아름다운 빛들이 부끄러운 몸을 감싸고 있는 물속까지 침범해 들어왔지만 우린 거침없이 온천의 매끄러움을 맨살에 느끼며 마음껏 황홀해 했다. 세월에 상관없이 여전히 탱탱하고 아름다운 선녀들의 모습에 반한 양들은 잠이 깨어 "음 메 에에" 침을 꼴 까닥 삼키었고 살랑 이던 바람마저 부러운듯 주위는 고요하기만 했다. 어느 곳에선가 날개옷을 감춘 나무꾼이 숨어 있을 만한데 새벽이 맞도록 잠꾸러기 나무꾼은 고맙게도 나타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기로 한 마지막 날 밤 온천을 즐기러 온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장작불을 피워 캠프파이어를 열었다. 서로간에 이름도 성도 직업도 모른다. 아니 알 필요도 없다. 다만 하늘에선 수많은 별빛이 땅에선 타오르는 모닥불이 서로 만나 둥그렇게 둘러앉은 이들의 얼굴을 환하게 비춰주고 있다. 짧은 만남, 깊은 추억을 못내 아쉬워하는 우리들은 눈빛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여서 우리 서로 사랑해'라고 말이다. 집으로 돌아온 이후 여행지에서 썼던 글을 출품했는데 올해의 신인상으로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중국 변방의 어느 노인이 말했다는 고사성어 '새옹지마'가 떠오른다. 인간 만사 화가 복이 되고 복이 화가 될 수도 있기에 무슨 일이든 그저 묵묵히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터득한다. 발병으로 얻은 나의 복처럼 사랑하는 독자들도 새옹지마의 복을 많이 받아 누렸으면 좋겠다.
2017-07-06 짝사랑의 실루엣
이사랑은 혼자서 하는, 마음으로 오롯이 쌓아가는 것이다. 그 사랑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다만 존재한다는 것에 감사드리면 되는 것이리라. 중학생 때 화실의 꼬마 선생님을 아주 오래 아무도 몰래 혼자 좋아했었다. 그 선생님이 머리 깎고 군대 가는 어느 가을날엔, 학교를 조퇴하며 혼자 어느 먼 초등학교 운동장 한구석에 서 있었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어른이 된 걸 보여주고 자랑하고파 선생님을 찾아갔었던 적도 있었다. 어떻게 그리도 용감했었는지 새삼 나도 놀란다. 무얼 원해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하고있는 것에 충실해지고 싶었고,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것으로 감사하며 내게 주어진 사랑의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었다. 어쩌면 소유의 유혹도 마음속 유치함도 하나도 필요하지 않은, 그런 투명함으로 부끄럽지 않았었나 보다. 갑자기 왜 이 혼자 하든 마음속 사랑이 떠올랐을까? 먼 바람결에 전해온 이야기 속에, 그 선생님이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다는 소식 때문이리라,,,
2017-06-04 낯선 곳으로의 꿈
아주 먼 곳의 작은 바닷가 마을. 조금은 넘치게 마신 와인과 기분 좋게 살랑거리는 바람과 초록빛 바다 색깔에 취한 체로, 아무도 알아보는 이 없는 나라의 골목길에서 나풀거리며 어두운 밤의 불빛 속을 걷고 싶다. 언제 한번 풀어놓고 자유롭게 나 자신을 꺼내어본 적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항상 두 손 움켜쥐고 혹시 잘못할까 걱정하며 살아왔는데 가끔은 훨훨 다 놓고서 편안해지고도 싶다. 언제나 오랫동안 가고 싶었고 꿈꾸던 곳. 조금은 낯설겠지만, 굳이 정들려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있는 곳. 그래서 난 여전히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상상을 하며 꿈을 꾼다. 떠나와 있다는 바람끼의 유연함까지 있기에. 마음껏 예술이라는 더 없는 감사를 빌려 나는 다시 날아가고 싶은 꿈을 이어가고 있다. 먼 낯선 곳을 그리며.
2017-05-04 여행 뒷이야기
꼭 가고 싶다는 바램과 어쩌면 무조건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절박함까지 더하면서 향한, 이탈리아 여행이었다. 어렵게 떠나는 만큼의 간절함도 물론 함께했다. 언제나 집안을 맴도는 생활을 넘어서서 어쩌면 무언가 다른 정신적인 영감을 얻고 싶었다. 무섭도록 푸르른 바닷가 언덕 위 가파른 곳에 세워진 성들을 보면서, 오래된 장엄한 성당의 천장 벽화와 십자가를 향해 무릎 꿇고 미사를 올리면서, 동굴 속에서의 긴 세월에 무너져 있는 조각들을 보면서, 울었었고 쓰다듬었었고 이제서야 왔다며 미안하다고 말했었다. 뾰족한 성 탑 꼭대기 계단 위에서는, 갇혀있던 동화 속 왕자님이 그리웠고 다시 가슴 두근거리며 펄떡이는 싱싱한 사랑의 물결도 그리웠다. 어쩌면 예전의 생에서 한번은 지나갔을 것 같은, 익숙하면서 전혀 낯선 기억들이 떠오르며, 무엇인지 모르면서 솟는 그리움과 마음 끝 바닥에 숨어있는 외로움들이, 생소한 언어 속에서 몇 번을 만났다. 긴 여행에서 돌아오면, 난 또 늘 하던 대로 늦잠을 자며, 저녁 밥상 위의 반찬을 걱정하며, 또 운전 중에 끼어드는 이를 향해 소리를 지를 것이다. 산다는 것이 늘 이런 것이지만, 오랫동안 걸어 왔던 인생의 피곤함과 뿌듯함이, 삶이라는 이름으로 묻혀서 빛을 바라지만 나만은 안다. 여기까지라도 얼마나 애썼고 힘들었는지.
2017-04-05 짝사랑은 그리움으로 인한 것이었음을
해마다 4월이 가까워지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괜히 나만 알기엔 아까운 듯, 일부러 달력에 나의 생일이라고 노란색 형광 칠을 해둔다. 일요일 늦은 오후 살풋 잠이 들었는데, 먼 곳에 있는 아들이 전화로 대뜸 어디에 있냐고부터 묻는다. 당연히 집이라고 했더니 바로 나와서 대문을 열어 보란다. 잠결에 문을 여니, 등 뒤로 환한 햇살을 받은 체, 한 아름 꽃을 안고 아주 이쁘고 밝은 미소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 아들이 서 있었다. 한 달 동안 계획하여, 비행기를 타고 꽃을 주문하고 친구와 약속하며 준비했다고 한다. 갑자기 밀려오는 감사함과 어느 누가 이렇게 사랑받을까 싶은 커다란 기쁨에, 꽃다발을 안고서는 엉엉 울어 버렸다. 언제나 가슴 저린 엄마의 짝사랑과 그리움으로 내 안의 한구석에선 늘 외로웠는데,,, 난 그날 내 사랑이 단지 한쪽의 사랑만이 아님도 알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4월은 오고 있지만, 올해는 나 혼자서 여행 계획을 이미 해놓은 상태이다. 나는 그날 나를 낳아 잘 길러주신 부모님과 묵묵히 인생이라는 길을 함께 절대의 동반자가 되어준 남편, 그리고 무한의 사랑을 배우게 해주는 아들에게 감사의 촛불을 켤 것이다. 멀리서 홀로, 그러나 가까이서 함께…
2017-03-03 여행에의 손짓
특별히 부족함이 없는 삶을 나름대로 영위하고 있다. 더하여,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쓸 수 있는 목적마저 채워가고 있는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뭔지 모르는 허전함에 젖을 때가 있다. 그것은 여행에의 손짓임을. 마음에 맞는 동반자와 함께 먼 길을 떠나고 싶지 않으냐는 여행에의 손짓이다.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런저런 약속을 앞두고 늘 불안해하고 초조하기까지 한 나의 성격, 이 성격으로 인한 내 스스로의 손짓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림과 글, 그 재능의 한계에 도달할 수 있는, 아니, 그 이상으로 표현하고 싶은 열정과 열망도 손짓 안에 포함되어 있다. 아니다, 이 모든 중심에 바로 이것이 자리하고 있음을 나는 안다.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껍질을 깨지도 못한 체, 다만 얇은 나비의 날개를 달고서 넓은 세상을 날겠다는 말만 되풀이되는 스스로의 다짐만으로는 부족했다. 이 다짐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여행에의 손짓에 따라가야 한다. 이럴 때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은 잠시라도 먼 곳으로 여행하고 싶은 것이다. 손짓을 따라 움직이고 나면 한 단계 올라선 삶의 울림을 안고 돌아오게 된다. 그것을 충전이라고 이름해도 좋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전이 되어지고 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으니까,,,,
2017-02-03 내가 원하는 것은,,,,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에 따라 살아가려 했을 뿐이다. 그것이 어째서 그리도 어려웠을까?"라고 말하였다. 이런 책을 읽고 있으면 과거의 난 무엇이었으며 또 어떻게 살았는지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는다. 사춘기의 심각한 반항도, 삶에 대한 고뇌도, 앞날을 위한 심각한 열정도 없이, 마냥 책상 앞에 앉아 입시를 위한 지독한 외우기에 전념했었던 거 같다. 점점 하나씩 세월을 먹으면서, 무엇인지도 모르는체 한 움큼씩 쥐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으며 편안해지고 싶어진다. 진정한 내가 아닐 지인데도, 세상을 살아가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할 때가 분명 있다. 과연 정말 내가 원하고 내 안에서 바라는 삶은 무엇일까? 분명히 읽어보았던 책인데도, 전혀 새로운 것으로 내 앞에 놓여 있다. 거의 100년 전의 "데미안" 소설 속 주인공들은 대체 어떻게 태어났으며 어떤 교육으로 세상을 배웠길래, 이리도 깊고 신중하고 삶에 대해 진심으로, 정면으로 부딪치며 고민하고 살았는지, 나 자신의 우둔함과 가벼움이 부끄럽다. 물론 각자가 살아가는 방법은 다 다르다. 하지만 내면의 진정한 소리를 지나쳐 버리지 말고 귀 기울여 들으라고 한다. 혼란 속에서 들리는 생각의 소리가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헤르만 헤세 자신도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위해서 살지 못했기에 분명 그렇게 썼을 것이다. 아는 만큼 느끼며 살아간다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의 깊이는 얼마만큼이며 진정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것은 무엇이며, 또 난 무엇으로 오늘 지금을 살고있는 것일까? 몇십 년 만에 다시 읽은 데미안에서 다시금 성장통을 겪는다. 그리고 이 성장통에 새삼 감사하며 스스로를 달래고 있는 나를 본다.
2017-01-02 물결 따라
세상 모든 것은 알지 못하는 커다란 물결 따라 흘러간다. 바로 어제까지 멋진 겨울 외투 사러 가고, 맛있는 거 먹고, 신나게 산다는 것을 만끽하며 또 새해에 시작할 큰 욕심 품으면서 의기양양 잠자리에 들었었다. 그러나 일어난 다음 날 차가운 아침은, 나 스스로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상태로, 온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무서움과 공포가 밀려오고 한순간 깨달았다. 너무 자만했었다는 것을. 폭우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말과 소의 이야기가 있다. "우생마사(牛生馬死)" 헤엄을 잘 친다는 말은 물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한 물살을 헤치며 거슬러 올라가다 지쳐 결국 물에 빠져 죽지만, 전혀 헤엄을 칠 줄 모르는 소는 거센 물살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스레 그 흐름에 맡겨 마지막에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언제나 새로운 해를 맞으면 모두가 또 다른 약속을 스스로에게 한다. 뭔가를 해보자면서 다시 자신을 무장하고 통제하며, 늘 하는 편안함과 느긋함을 깨면서 마치 어제와 오늘은 별로 좋지 않았다는 듯이, 알 수 없는 내일을 위해 서두른다. 몸의 중심인 허리가 단 한 순간에 움직일 수가 없게 되며, 모든 일상의 간단한 일들을 할 수 없게 되면서 배웠다. 오늘은 오늘뿐이며 무작정 앞만 생각하고 살지 말며, 쉬어가며 하라는 오늘이 더없이 소중하다는 것을. 몇 주를 침대에서만 푹 쉬며 아무런 생각 없이 있다. 열심히 걸어 왔으니 이제는 조금 내려놓고 쉬었다가 가라고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체, 매운 라면도 끓여 먹고 설거지도 내버려 둔 체, 너무도 달달한 사랑 이야기인 연속극 봐가면서, 게으름으로 있으련다. 커다란 파도가 치면, 세상일들 물결 따라 흐르며 살으란다.
2016-12-01 사랑 그리고 예술
진정한 예술 작품은, 긴 시간의 힘든 인내와 삶의 고뇌가 더불어 외로운 창작의 고통에서 나오는 거라 한다. 그리고 그런 작업 속에서 깨어있는 예술가는 늘 춥고 배고프며 외롭다고들 한다. 결혼 후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있는 나에게, 엄마는 친구분들에게 늘 그러셨다. "우리 딸은 사랑에 빠져서 예술을 못해요." 하시면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 누구나 하는 것이 아닌 세상의 남다른 삶을 살았으면 하는 욕심이셨나 보다. 하지만 난 그렇게 말씀하시는 춥고 외로운 예술가를 경애하고 두려워하며 또한 더 멀리 있으려 했었다. 이제 어느덧, 두려워하며 서성이고 있던 그 예술의 문 앞에서 간신히 고리를 잡고, 문턱을 넘어서려 애쓰고 있다. 가끔은 잠 못 이루는 밤도 있어, 눈 밑의 거뭇한 주름 길게 달고서 온 머리를 다 흔들고, 무엇 하나라도 써보려 하얗게 새벽을 보기도 한다. 감히 어찌 예술이라는 단어를 꺼낼 수 있을까마는, 내게 있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은 작은 기도이며 구원이다. 무엇을 원하고 또 해달라는 소원의 간절함이 아니라 감사의 감사로서 올리고 싶은 무조건적인 겸손함이다. 꼭 그런 힘든 고통 속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예술이라면, 조금은 덜 춥고 덜 배가 고프며 덜 외로운 지금의, 넘치는 감사 안에서 만들어가는 나름의 작업들을 난 사랑이라고 하고 싶다. 남은 딱 하나의 간절한 소망은 - 한참을 모자라는 인내이더라도, 높은 삶의 고뇌 속에 있지 않더라도, 간절한 사랑을 넘치게 받아 외롭지 않더라도 ? 꺼지지 않는 창작의 열정 안에서 진정한 예술작품을 단 하나라도 남기는 것이다.
2016-11-03 모딜리아니 전시회를 보고서
기다리고 꼭 해야만 했던 숙제 같았던 만남이었다. 가을 끝자락의 이른 아침, 텅 빈 전시장 안은 쓸쓸히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고,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거처럼 뿌연 안갯속에 유독 그림들만 살아서 다가오고 있었다. 기다란 목을 비스듬히 기울인 체 온몸을 다 드러낸 여인의 그림은, 어릴 적 현관 앞 신발장 위에 아주 오래오래 세워져 있었다. 누구의 그림이었는지 알기도 전, 하루에 몇 번씩 신발을 벗고 신으면서 마주쳤던 그 그림은 내 망막과 심장 위에 문신처럼 새겨져 버렸었다. 철들어 그림 공부를 시작하며 모으기 시작한 화집 속에서 모딜리아니라는 이름을 알았지만, 나의 그림 속엔 언제나 아무도 몰래 숨어 있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간 만나지듯, 긴 시간을 보낸 후에 비로소 마주한 그의 진짜 작품 앞에서, 난 한동안 숨을 멈추며 서 있었다. 이렇게 이 순간 이런 설레는 뜨거움이, 바로 새로운 그림 공부의 되새김질이라는 의미를 알게 될 줄이야. 그는 너무도 가난하여 캔버스의 뒷면까지도 아껴가며 그려야 했었고, 빵을 사기 위해 조각을 포기하고 잘 팔리는 초상화들만 그려야 했었다. 그러나 그가 표현했던 모든 인물은 고개를 살짝 기울인 기다란 얼굴의 불균형한 모순 속에 있지만, 오히려 더 가슴 속 깊은 곳을 저릿저릿하게 만드는 먹먹한 아름다움이었으며, 그림 속 여인의 텅 빈 동공은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공감의 아픔이었었다. 만남의 끝은 다시 헤어지는 것이지만, 항상 내가 그려가는 그림의 색깔 위에서, 나비의 날개 위에서 언제나 살아서 흔적을 남겨 놓을 것이다. 그의 불행했던 36년의 짧은 생이였지만 무한한 예술의 생에서는 영원히 살아 행복해 할 것이다.
2016-10-05 여름은 떠났고
올여름의 낮은 유난스레 뜨거웠고 또 해가 진 후의 밤은 묘한 차가움에 오돌오돌 추웠었다. 그 변덕 부리던 계절이, 천천히 보이지 않게 떠나며 시간의 다리를 건넜다. 어젯밤, 누군가가 하늘의 보름달을 꼭 대문을 열고서 보라고 했다. 새삼 문밖으로 나와 본 달은 환하게 더 가까이에 떠 있었으며, 그 달빛 탓인지 대나무들은 그림자와 더하여 훌쩍 더 길어진 모습으로, 얕은 바람과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모르는 척해도 나무들은 아무 탈 없이 잘 자라고 있었고, 어느새 잠결에 따라 나와 유난히 비벼대며 사랑을 원하는 고양이도 벌써 다 자라 버렸고, 나도 그사이 조금씩 알게 모르게 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내가 주제가 아닐 진데도, 어리석게 그냥 모른 척 해버리면 변하지 않은 체 있어 줄줄 알았었나 보다. 변하지 않고 고여 있는 건 썩는 것이라는데 그래도 달라져 떠난다는 건 아프다. 거울 속 나이 들어가는 나의 모습도, 곁에 마냥 있을 것 같은 이들의 갑작스러운 이별도, 세월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시간의 무서움도, 되돌리지 못하는 많은 해야 하는 일들도. 그런 무심함에 억지로 갇혀있는 나에게, 어릴 때 고향으로 성묘 가던 이야기와 보름달을 보라든 작은 글귀 하나가 후두둑 내리는 소나기처럼 시원하게 적셔왔다. 어쩌면 이제는 그 무심함의 게으름도 충분하고 미적거리는 겸손도 그만하고서, 마음 창고 건너편 속에 자물쇠 걸어뒀든 또 다른 욕심과 용기를 꺼내야만 할 거 같다. 그렇지, 또 다른 여름은 다시 올 것이며, 늘어져 있는 허리춤 추겨 올리면서, 산다는 것의 남아있는 몫의 판, 신명 나게 즐기며 해보련다.
2016-09-02 술 한잔
술이 주는 작은 여유에 온종일 꽉 쥐고 있던 하루가 노곤해지면서 힘이 풀린다. 아주 옛날 - 저녁 해 질 무렵, 애국가가 흘러나오면 모두가 하고 있던 일들을 멈추던 때가 있었다. 그 시간이면 뒷마당 돌 불상들이 나란히 서 있는 연못 앞에서 엄마가 맥주를 드시곤 했던 기억이 난다. 윗층의 병원에서 일하시다 마당에서 놀고 있던 나를 부르시고서는 "엄마, 맥주 하나 가져다 드려라"고 하며 웃으시던 아버지의 모습도 생각난다. 새삼 맥주를 권하며 아래를 내려다보던, 또 해 질 녘의 모과나무 아래 그늘 밑에서 위를 바라보며 눈을 맞추던 두 분의 보이지 않턴 애틋한 사랑에 가슴이 먹먹해 온다. 그땐 왜 그리도 몰랐었는지,,, 하루가 끝나가는 고단한 시간에 아버지는 엄마가 그리웠었고, 또 그 작은 맥주 한잔이 오늘도 수고하였다는 고마움의 표시였던 것 같다. 이 사랑을 이제서야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어느덧 나도 그 시절의 어른 나이가 되어 세월을 많이 묻혀간다. 가끔 해가 산을 넘어가며 모두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서두르는 시간이 되면, 그때의 어린 내가, 차가운 맥주 한잔을 들고서 엄마 흉내를 내곤 한다. 이제는 흘러나오는 애국가도 없고 그 연못도 불상도 모과나무도 없으며 물론 엄마, 아버지도 계시지 않는다. 세월이 지나가면 그 자국만큼 잃어버리는 많은 허전함 때문에, 우린 추억이라 부르면서 또 채워가고 있는가 보다. 모두가 각각 길 위에서 인생이라 하며 걸어가고 있지만, 이런 따뜻한 꺼지지 않는 기억들이 고마움으로 또 축복으로 내게 내려온다. 가끔은 지쳐서 손끝조차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도 있고, 또 온통 짜증에 넘쳐 아무에게라도 함부로 하는 날들이 있다. 그런 날이면, 그 무례함과 오만함과 또 감사할 줄 모르는 어리석음에 용서를 빌면서, 두손으로 힘주어 움켜진 체 살고있는 오늘이라는 이름 앞에서 잠시나마 흐트러지고 싶다. 커다란 반항보다 술 한잔의 비틀림으로 - 조금은 미안해하면서 - 풋내나던 예전의 실수들도 다시 기억하면서, 후회보다는 차라리 작은 여유를 찾으련다.
2016-08-01 친구
친구라는 말만 들어도 왠지 힘이 나고 편안하다. 무엇이 무엇 때문에 무엇으로, 우리는 이런 단어로서 불려지고 또 애뜻해 하며 유독 힘든 날엔 더 생각이 나는 것일까? 어릴 적 나란히 연결되어 있는 집의 우리 셋은, 같은 학교와 동네 그리고 똑같은 나이로, 항상 함께 언제나 있었다. 늘 잘 넘어져서 온통 무릎에 상처투성이의 나는, 가운데 친구의 병원 집에서 빨간 약으로 치료받고, 맨 끝의 친구 - 식당 집에서 맛있는 장조림 밥상을 받곤 했었다. 무슨 대화를 했었는지 어떻게 놀았는지의 기억들은 가물거리지만, 한없이 편안했고 욕심내며 싸운 적이 없었다는 생각은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헤어졌고, 세월의 시간 안에서 각자의 인생길을 따라 숨 가쁘게 살아오다, 문득 어느 날 우리 셋은 만났었다. 어릴 적 고향 바닷가의 커다란 소나무 앞에서 그냥 얼굴만 바라보며 아무 말없이 서 있다, 떠나야 하는 차 시간이 된 가운데 집 친구는 그렇게 가버렸고, 남겨진 우리 둘은 또 그렇게 헤어졌다. 너무도 다른 서로의 삶으로, 가운데 집의 친구는 아기도 없이 오로지 남을 위해 희생하며 종교적으로 살고 있고, 끝의 집 친구는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혼자 모든 것을 정리해가며 열심히 살고 있으며, 나 또한 이 먼 곳에서 떠나왔던 곳을 그리워하며 이렇게 살고 있다. 과연 운명은 있는 것일까? 스스로가 짊어지고서 가야 하는 등 뒤의 십자가는 정말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그렇게 시간에 휩쓸려 살아지는 것일까? 가끔 우리 셋은 뜬금없는 글들을 보내면서 각각 스스로를 위로하며 또 만나고 싶어 한다. 아무런 할 말도 없고 또 함께 공유해야 하는 공통점도 없으면서, 언제나 마음속의 친구라는 단어의 처음에는 그들이 제일 먼저 순순히 앞자리를 잡는다. 점점 예전의 기억들이 더없이 떠오르는 만큼, 그런 아무것에도 원하던 거 없던 순수함이 그립다. 뭐라도 주고 싶은 아니 내 마음속의 기도라도 그들을 위해 더 올리고 싶은 간절함이다. 한밤의 조용한 시간에 돌아앉아 우두커니 벽을 바라보며 십자가를 그린다. 큰 세상의 반짝이는 화려한 별보다 작고 좁은 나의 하늘 위의 수수한 별처럼, 외로운 날이면 존재의 따뜻함만으로도 작은 위로가 되어주는 그들을 위한, 무릎 꿇은 욕심 없는 기도를 올린다. 오늘도 친구라는 편안한 이름의 누군가에게.
2016-07-03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며칠을 같은 그림을 들고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앉아만 있다가는, 일어나 부엌으로 가 물 한 잔을 들고서 창밖을 바라본다. 생활이라는 공간과 예술이라는 두 가지의 커다란 작업을 한꺼번에 매일같이 나란히 바라보면서 기막힌 줄타기를 하는 중이다. 갑자기 그리고 싶다는 충동이 언제나 항상 오지를 않는다. 그렇지만 마음과 손은 하자고 그래도 해보자면서 나를 이끈다. 수천수만 가지의 온갖 색색의 나비들이 세상을 날아다니면서 강하면서도 어지럽게 유혹한다. 이렇게도 화려한데 나를 모른 척할 거냐고도 하고, 나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본 적이 있느냐고도 하면서, 저녁 밥상의 반찬 걱정하고 있는 나에게 날갯짓한다. 이 귀한 나비들을 어떻게 붙들어서 어떤 마음으로 곁에다 두고 간직하고 있는 것들인데 싶어, 더없이 미안한 마음으로 다시 그림 앞으로 앉는다. 순간의 붓 자국만으로도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실력이 있다면, 어쩌면 지금보다 더 간결하게 양쪽의 줄을 서로 팽팽하게 더 잘 균형을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여전히 예술이라는 가장자리를 아직도 헤매고 있는 천재가 아닌 난 수없이 절망한다. 어쩌면 다 모른 척하며 그냥 나비들만 붙들고서 그리면 엄청난 작품이 나올 것이며, 난 불후의 명작을 남길 수 있을까 하며 상상도 해본다. 그렇지만 해질 무렵의 부엌에서의 난, 언제나처럼 콩나물을 씻고 생선에 소금을 뿌리고 간을 맞추며, 이 테두리 안 동그라미 안에서의 일상을 꾸려간다. 무엇을 위해서 그림을 그리면서 왜 하는 것일까,,,, “아무런 것에도 매달리고 싶지 않아, 그냥 좋아서 사랑해서 하는 것이다. “ 하면서 구속 아닌 더 질긴 구속을 감사해 하면서, 아직도 끝내지 못한 나비의 그림 앞에서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반쯤 비어있는 캔버스 앞에서의 그림 그리는 과정을 느긋한 게으름으로 즐기고 있다.
2016-06-02 글에서 삶을 배우다
글을 읽으면 그 안에서 인생을 배우게 되며, 그 배운 걸 알고 깨달으면서, 그로 인해 얻고 느끼는 그만큼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 책을 처음 받고서는 그 제목이 주는 감동에 조금 흥분했었다. 늘 마음속으로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살아가는 이 삶은, 시작도 끝도 모두 단 한번의 연습도 없으며 또한 정답도 없이 가고 있다. 그렇지만 글에서 배우는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책 속의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깨달으며 삶의 지혜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인생을 우리는 훈련도 없이 또한 연습도 없이 하려니, 힘들고 실수도 하며 가끔은 엉망진창으로 되기도 하며 살아간다. 이 책 속의 첫 이야기에 "소나기의 작가 황순원 선생님"의 말씀이 시작된다. '사람이 어떻게 죽을 것이냐 하는 문제는 곧 어떻게 살 것이냐 하는 문제와 같다.' 어려운 기다란 어떤 설명보다,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이렇게 하나의 문장으로 던져줄 수 있다니, 새삼 책을 들고 구석진 자리를 찾던 어릴 적부터의 버릇에 감사할 뿐이다. 책도 사람도 물건도 - 세상 모든 것에는 저마다의 인연이 있다. 좋은 소중한 만남을 인연으로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과 정성과 진실이 필요하듯이, 좋은 책 속의 글들을 찾아 마음으로 읽으며 느끼다 어느 한순간, 내 삶에 꼭 필요한 구절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어떤 어느 한 줄의 문장이 내 인생을 바꾸게 되며 또 세상을 바꾸게 되는 그런 기막힌 인연을 만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여전히 책을 든채 아직도 서성이고 있고 또 그런 운명적인 글을 만나지는 못하였지만, 그나마 지금의 이 자리만큼이라도 서 있을 수 있는 건, 글에서 삶을 배우게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